2020.8.8 토 16:40
> 뉴스 > 기획칼럼 > 주지스님과 함께하는 화엄성중 가피순례
     
고달픈 민초들의 염원, 미륵의 세상을 그리다
법륜사·칠장사·청룡사
2020년 04월 25일 (토) [조회수 : 122]
   
 

‘붓다로 살자’ 만일결사 정진도량
문수산 법륜사 

1995년 초, 서울 삼각산 승가사 제일선원에서 참선 정진 중이던 상륜 스님이 꿈을 꾸었다. 수백 그루의 밤나무와 감나무가 울창한 아담한 산이 나타나고, 그 산자락을 거침없이 올라가니 산 중턱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커다란 푸른 용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푸른 물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나투어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수행하여라.”

   
▲ (좌측부터) 법륜사 아자삼복개형태 대웅전, 법륜사 삼층석탑(경기도문화재자료 제145호), '붓다로 살자' 만일결사 입재 기념석

꿈에서 깬 상륜 스님은 그 산을 찾기 위해 몇 달간 서울 근교를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도 용인 문수산 자락에서 꿈에서 본 절터를 만났다. 고려 때 사찰 문수사가 남긴 빈 터와 가까이 마애불(경기도 유형문화재 120호) 두 기가 그곳이 불교 성지임을 말해주었다. 산 중턱 맑은 샘물을 본 스님은 그곳이 꿈에 청룡이 치솟아 올라간 자리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후에 그곳에 수각을 세우고 용수각(龍溲閣)이라고 불렀다.
당시 승가사 주지 소임을 살면서 문수산에 오가기를 10년, 긴 불사 끝에 드디어 2005년 11월, 용인 문수산 법륜사가 개원법회를 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아자삼복개형(亞字三覆蓋形)’ 대웅전이다. ‘아(亞)’자 형 삼복층 구조에 주로 궁궐에만 쓰였던 ‘청기와’를 올려 시각적 아름다움과 공간적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지붕 위 상륜부는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여섯 송이 연꽃과 팔정도를 상징하는 여덟 장의 연잎을 겹으로 표현한 것이고, 꼭대기의 수정은 부처님 자비광명을 상징한다.
석가모니불을 위시한 대웅전 삼존불은 석굴암 부처님을 닮았다. 다만 크기가 그 세 배에 달하는데, 전각 안의 석불로는 국내 최대라고 한다. 50톤 원석으로 빚은 석재 탱화도 독특하고, 백두산 홍송(紅松)만으로 조성한 대웅전 내부의 모든 것에서 간곡한 신심이 느껴진다. 
샘터 ‘용수각(龍溲閣)’은 “서출동류(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하는 법륜사의 샘물이 수많은 중생들의 병고를 치유할 것이다!”라는 상륜 스님의 말씀처럼, 연꽃이 즐겁게 피는 터전, 선인이 앉아 고요히 명상하고 있는 형세의 땅으로, 불법에 목마른 중생들에게 그윽한 쉼터가 된다.
역사는 짧지만 법륜사는 어엿한 전통사찰 108호 등록 사찰이다. 고유의 전통을 살린 우아한 건축양식과 가람 배치가 건축적, 불교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오래된 것도 있다. 개인이 기증한 통일신라 하대의 삼층석탑(경기도문화재자료 제145호)과 목불좌상(경기도유형문화재 제311호)이 그것이다. 
법륜사는 산중에 있으나 미래형 포교사찰의 모범이다. 법화경 독송 3년 기도 회향을 계기로 2014년 8월 17일 ‘붓다로 살자’ 만일결사에 들어갔다. 190명이 1차 천일기도를 회향했고, 현재 3차 결사 중이다. 법륜사 사부대중은 ‘5대 결사 실천항목’과 ‘법륜사 생활청규’를 중심으로 신행을 함께 실천하고 있다. 하안거 공승법회, 가을철 ‘좋은 이웃되기 바자회’, 봄철 산사음악회, 겨울철 논산훈련소 호국사 수계법회 등, 법륜사의 일 년 365일이 눈부시다.


이제 경기도 안성으로 떠난다.

안성은 ‘미륵의 고장’답게 미륵불이 많은 곳이다. 미륵신앙은 일반 백성, 가난한 민초들이 주로 믿는 신앙이다. 세속의 온갖 풍파에 지친 이들이 “현재는 이미 글렀으니 제발 하루 빨리 나투어 구원해주십시오” 기원하며, 들판 모퉁이나 마을 입구 또는 둔덕에 투박하게 세운 미래의 부처가 미륵불이다.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건, 안성의 현실이 상대적으로 더 혼란스러웠고, 백성들이 살기 강퍅했다는 뜻이다.
또한 안성지역 이름난 절들에는 도둑이나 남사당패 등 천민들과 관련된 이야기나 유물들이 많다. 이번에는 신라시대 고찰 칠현산 칠장사와 고려 때 사찰 서운산 청룡사를 찾아가 보자.


궁예·박문수·임꺽정이 꿈꾼 세상,
안성 칠현산 칠장사

서기 636년(선덕여왕 5) 자장(慈藏) 율사가 창건했다는 칠장사는 혜소 국사(慧炤國師(972~1054)) 때 가장 번성했다. 이후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조선 숙종 때인 1704년, 대웅전과 여러 전각을 지으면서 가람 배치가 여법해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몇 전각이 불타거나 자리를 옮기고 새로 생기는 등 변화를 겪어왔다.

   
▲ (좌측부터)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488호),극락전 꺽정불,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

그럼에도 칠장사는 천 년 고찰의 향기가 물씬 나는 절이다. 국보인 오불회괘불탱(제296호)과 혜소국사비(보물 488호), 인목왕후어필(보물 1627호) 등 귀중한 문화재도 많다. 특히 대웅전·사천왕문·원통전·명부전 등 네 개의 전각은 18세기 초에 지어져 고색창연함이 담채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곳도 칠장사다. 뒷산 ‘칠현산(七賢山)’ 이름에 얽힌 일곱 도둑과 혜소 국사의 가르침으로 현인이 되어 혜소 국사와 함께 나한전에 모셔진 이야기,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林巨正, 1559~1562년 활동)이 극락전에 ‘꺽정불(아미타불)’을 모신 이유, 궁예가 유년기에 활쏘기 연습을 하며 고구려 재건의 꿈을 키운 궁예 활터 등에 관한 것이다.
극락전 ‘꺽정불’ 이야기는 이렇다. 임꺽정이 칠장사 병해 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교류하다가 스승이 입적하자 그의 성불을 기원하며 아미타 불상을 공양했다고 한다. 그 불상이 지금 극락전의 ‘꺽정불’인데, 탄소연대 측정 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한전과 그 옆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에 얽힌 고사도 재밌다. 암행어사의 대명사인 박문수가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길에 칠장사에 들러 기도를 했는데, 그날 밤 꿈을 통해 시험 문제를 알게 되어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그때 기도한 곳이 나한전이어서 요즘도 수능시험이나 사법고시, 입사시험 등을 앞두고 찾는 이들이 많다.
나한전에는 일곱 나한과 세 부처가 모셔져 있다. 일곱 나한은 현인이 된 도적들이고, 세 불상 중 주불은 혜소 국사라고 한다. 박문수의 어머니는 이들이 인도나 중국에서 건너오지 않은 순수한 ‘토종 부처님’과 ‘토종 나한님’이어서 기도 효험이 빠를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에게 기도를 권했다고 한다.
궁예 활터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유년시절 약 10년간 이곳에 머물며 활쏘기를 익혔다는 곳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지나쳐갈 만큼, 별다른 안내판이 없다. 사천왕도 특이하다. 사천왕들이 밟고 있는 악귀를 ‘생령좌’라고 하는데, 칠장사 사천왕에게 밟히는 악귀들은 청나라 군졸들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으면 그럴까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마을로 내려온 절 청룡사,
남사당패의 고단함을 품다

안성 청룡사는 1265년(고려 원종 6) 명본 대사가 ‘대장암(大藏庵)’으로 창건해서 1364년(공민왕 13) 나옹 선사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청룡사(靑龍寺)로 바꿨다고 전한다. 절 지을 곳을 찾아다니던 나옹 선사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고 터를 잡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서운산(瑞雲山)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청룡사는 깊은 산중에 자리 잡은 고찰들과 달리, 마을 가까이에 터를 닦았다. 청룡사사적비와 고려시대 불탑이 마을길 한복판에 서 있는 건 그 까닭이다. 절 가까이에 사당패 마을인 불당골도 자리잡고 있다.
청룡사는 1990년대에 생겨난 남사당패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한겨울의 끼니를 청룡사에 기대어 버텼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서 전국을 떠돌며 연희를 팔아 연명했다. 남사당패의 대표적인 인물인 ‘바우덕이사당’이 불당골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룡사는 이처럼 마을로, 민중들 곁으로 내려온 사찰이다.
청룡사가 자리잡은 서운면에는 유달리 미륵이 많다. 확인된 미륵만 3구에 달하는데, 학계에서는 서운산 북산리 미륵 등 3구의 서운면 미륵을 세운 주체가 청룡사 창건 주체와 같다고 추측한다.
이 때문에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서처럼 청룡사 창건이 알려진 것보다 300년 더 앞선, 고려 4대 광종(光宗, 925~975, 재위 949~975) 때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광종 임금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청룡사를 창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 확인을 통한 전문가들의 관심과 연구가 기대된다.
청룡사는 문화재 88건, 173점을 보유하고 있다.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그만큼 절 살림이 여유로웠다는 뜻인데, 고려 공양왕의 어진을 봉안한 진전사찰이며 조선 인평대군(1622~1658)의 원당으로서, 왕실의 후원 덕분인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청룡사 문화재 조사보고서 『조선의 원당 2, 안성 청룡사』를 발간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이 가운데 대웅전(보물 824호), 영산회괘불탱(보물 1257호),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24호), 삼층석탑(문화재 자료 59호), 동종(보물 11-4호)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눈에 띈다.
청룡사는 한창 불사 중이다. 대웅전 건물 전체가 변형되어 2016년 6월부터 해체·보수에 들어갔다. 휘어진 그대로를 살려 세운 아름다운 대웅전 기둥과, 그와 조화를 이룬 자연스런 현판을 보려면 한 번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때는 발길을 늦춰, 서운산 깊은 골에 남아 있다는 나옹 선사 토굴에 가보기를 권한다.

글 | 노희순 (자유기고가)
글 | 노희순 (자유기고가)의 다른기사 보기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조계사뉴스
‘백만원력 결집불사 저금통과 약정금 ...
노드정보기술, 열화상 카메라 기증
화엄성중기도 입재식 봉행
문화
방송
조계사 정초7일기도회향 원행스님 ...
조계사 정초7일기도입재 지현스님 ...
조계사 일요법회 진우스님 법문(2...
기획칼럼
고달픈 민초들의 염원, 미륵의 세상을...
좋은 인연 만들기
보살(12)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144)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 Tel 02-768-8600 Fax 02-720-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수용
Copyright 2010 미디어조계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