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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12)
2020년 04월 01일 (수) [조회수 : 52]
   
 

그리운 어머니.
요즘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과 불안 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학계에서는 이러한 변종 바이러스가 인류를 계속해서 위협해 올 것임을 경고해왔지요. 동물의 몸에서만 살던 바이러스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변형을 일으켜 인간의 몸에 침투하는 것은 박쥐와 같은 동물의 서식지가 인간의 개발과 욕망으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메르스든, 사스든, 코로나든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스스로 자초한 고통이란 뜻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만일 자타불이와 요익중생(饒益衆生,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의 마음으로 살았다면 인류에게 이런 고통은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오늘은 그 가르침의 정점을 담은 보현보살의 10대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현행원품>의 서분序分

보현보살의 10대원을 담은 <보현행원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신 후,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부처님의 공덕은, 모든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이 무수히 많은 세계 속에 있는 티끌의 개수만큼 무수한 겁(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말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 공덕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량이 없으니, 만약 그대가 그러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이루려면 마땅히 열 가지 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대승경전을 읽다보면 ‘항하사(恒河沙)’라는 비유가 자주 등장합니다. 항하사란 인도 갠지즈 강(항하) 주변에 퍼져있는 모래 알갱이(사)를 말합니다. 만일 누군가 ‘해운대 백사장에 깔려있는 모래 알갱이는 총 몇 개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른다’라거나 ‘헤아릴 수 없이 많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2Km 남짓한 해운대 모래사장도 그러하거늘, 2,500Km에 달하는 갠지즈 강 주변의 모래알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보현행원품>은 항하사의 비유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세계 가운데 떠다니는 먼지(티끌)’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비유를 ‘부처님이 지니신 공덕이 너무나 많고 대단하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보현행원품>을 애써 읽는 보람이 없습니다.
서분에서 ‘부처님의 공덕이 무한하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요. 첫째,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은 곧 깨달음에서 나왔으므로 그 ‘깨달음이 무한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무한함은 부처님을 찬탄하기 위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중생의 유한한 소견이나 알음알음으로 그 깨달음과 공덕에 다가서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화엄경의 골수를 210자에 녹여낸 의상스님의 <법성게>, 그 네 번째 구절이 바로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진리는 깨달은 지혜로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경계가 아니다.)인 것도 이러한 의미입니다.
두 번째, 무한함은 앞으로 펼쳐질 보현보살의 무한한 행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한한 공덕과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선 보살 또한 무한한 서원과 수행을 펼쳐야겠지요. 이처럼 무한으로 끝없이 펼쳐진 부처님 세계에서 보살이 무한으로 끝없이 장엄해나가는 것을 화엄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합니다. 정리하면 <보현행원품>의 서분은 깨달음이란 결코 중생이 지닌 알음알음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되며, 보현보살의 무한한 마음과 행원으로 끝없이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보현10대원

①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는 것
참된 예경은 무한한 세계에 계신 무한한 부처님들께 빠짐없이 보현의 수행과 서원의 힘으로 깊은 믿음을 일으켜 행동과 말과 마음가짐을 청정하게 닦아나가는 것입니다. 참된 예경을 위한 전제는 ‘깊은 믿음(深信’)입니다. 사실 보현의 10대원 모두가 신심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죠. 화엄경에는 “믿음이야말로 도의 으뜸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信爲道元功德母)”라는 게송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보현보살은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수많은 세계의 수많은 부처님이 현재 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여겨 받드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보현보살의 아홉 번째 서원인 ‘항순중생원’에서 알 수 있듯 내 눈 앞의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서 예경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②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보현의 찬탄은 모든 곳에 모든 부처님이 빠짐없이 상주하심을 믿고, 훌륭한 지혜로써 중생을 위해 미묘한 음성을 내어 모든 부처님의 공덕과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현행원품>이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함으로써 시작되듯 말입니다. 이러한 공덕을 세상 모든 중생의 업과 번뇌가 끝날 때까지 쉼 없이 닦아나가는 것(중중무진)이야말로 진실로 부처님을 찬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③ 널리 공양하는 것
공양은 불전에 올리는 모든 향과 초, 꽃, 쌀 등 물질적 공양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보현보살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살로서의 법공양입니다.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으뜸이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거두어 품어주는 공양,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 선한 바탕을 닦아나가는 공양, 보살로서 해야 할 일을 저버리지 않는 공양,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쉬지 않는 공양이 그것이니라.”
보현보살은 앞서 열거한 모든 물질적 공양을 합한 것이 잠시 행한 법공양의 공덕에 비하면 터럭이나 티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④ 모든 업장을 참회하는 것
보현보살의 참회는 단순히 과거의 행위에 대한 반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묶을 때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행위를 참회하면서, 현재의 청정함에 머물고 미래에 일어날 악업을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보살들께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참회의 마음이니라.”

⑤ 다른 이가 행하는 공덕에 기뻐하는 것
이는 모든 부처와 보살, 성문, 연각 등의 깨달음을 향한 수행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깨달음을 향한 정진에 감사하고 그로 인해 중생이 구제됨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⑥ 부처님께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
부처님이 온갖 방편으로써 중생의 이익이 되는 법문을 설하시기를 청하고 바라는 진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⑦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길 청하는 것
부처님을 비롯 보살과 성문, 연각 등 깨달은 모든 선지식이 빨리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오래 머물면서 중생을 이롭게 해주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
부처님이 행한 수많은 고행과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일, 여러 신통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원만한 음성으로 설법하고, 마침내 중생에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열반에 들어가신 모습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 배우는 것입니다. 이는 곧 내가 중생으로서 삶이 아니라 부처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부처로 살자’라는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행해서 부처답게 살아보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⑨ 항상 중생을 따르는 것
보현보살이 말하는 중생은 인간을 비롯해, 동물과 식물, 용과 팔부신중 등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생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생에게 공양하기를 부모처럼 공경하면서 하고, 부처님과 다름없이 받드는 것입니다. 왜 중생을 따라야 할까요? 중생을 섬기는 일이 곧 부처님을 섬기는 일이고, 중생을 기쁘게 하는 일은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보현보살은 말합니다. 화엄경에서는 ‘중생과 부처와 마음,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를 화엄경의 핵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보시기에 중생은 부처와 다름이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중생을 찬탄하고 예경함은 결국 부처님을 모시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화엄경과 보현보살의 모든 서원은 결국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에 귀결됨을 알 수 있지요.

⑩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중생을 위해 회향하는 것
지금까지 중생을 위해 지어온 모든 공덕을 다시 중생의 행복과 안락을 기원하며 거듭 중생계로 회향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중중무진의 공덕이지요. 그리하여 ‘그들의 과보를 내가 다 받고, 중생들은 해탈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진정한 회향의 자세입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생이 없이는 부처도 없고, 중생이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일체의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빠짐없이 공경하고 행복하게 하겠노라’는 보현보살의 거룩한 서원을 다지고 행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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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이야기』 외

글: 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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