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수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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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 만들기
2020년 04월 25일 (토) [조회수 : 185]
   
 

하얀 종이위에 글을 써내려가다보니 초등학교 시절 하얀 도화지 위에 크레용을 들고 그림을 그리려 할 때가 떠오릅니다.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저는 어느 한 곳에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포기하곤 했습니다.
돌아보니 중학교 때까지도 자유롭게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 자신이 그 때도 이상하게 느껴졌나봅니다.
어느날 내가 왜 그럴까 싶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었습니다. 교과서 책에 있는 그림을 그대로 따라 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저는 하얀 도화지 위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그 순간의 느낌이 느껴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작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생각이나 느낌대로 표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의 노출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어린시절의 내가 언제 나에 대한 자신감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습니다.

어린 시절 지리산 실상사에는 어린 나와 남동생 그리고 은사스님과 공양주 보살님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물론 가끔 살다가 가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식구로 계속 살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총무원 일을 마치고 오시는 길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와 함께 논길을 걸어서 절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주 서울을 가셔야 했기 때문에 새벽 예불부터 저녁 예불까지 또, 방학에는 사시예불까지 제가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이 걷다가 스님이 묻습니다. 절을 잘 지키고 있나? 저는 아마도 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아니 마음으로는 확실하게 자신있게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스님의 그 질문 한 마디가 제가 이 동네에서 제일 커 보이는 집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아주 초라해서 늘 숨어서 두려움에 떨던 아이에서 동네에서 제일 큰 집의 장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중학생이 되어서 은사스님이 지리산 남쪽 따뜻한 나라 하동 쌍계사 주지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연히 따라서 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개학하기 전이라 절에서 있을 때였습니다. 이 때에도 스님이 적어서 새벽 3시 반이면 대종과 법고를 치는 것이 저의 소임이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이라 쌍계사 절 뒤의 계곡에 초등학생인 동생을 데리고 가는 길에 몇몇 아이들이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큰 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여기서 물고기 잡으면 안돼! 알았지?!
아이들은 순간 동작을 멈추고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도 기세등등하게 말하니 얘들이 그런가 보다 해서 내려갔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이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계곡도 절 땅이니 제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내가 주인이어서 당연한 권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개학을 해서 반에 배정받고 마침 뒤에 빈자리가 하나 있어서 앉게 되고 그 친구와 짝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흘러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때 고기를 잡으러 친구들을 데리고 왔던 아이가 이 친구였습니다. 그 후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는 어느 순간 쑥쑥 자라는 시기가 있습니다.

청소년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상이 대해주는 대로 그 아이는 그런 청소년이 됩니다. 다만 내가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이 조금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선생님의 역할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알려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늘 기억납니다.
한 청소년이 교실에 침을 뱉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여러 번 충고를 하고 벌을 주고 친구들이 불편해 해도 그는 고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너는 교실에 침을 뱉는 아이구나! 라고 말해주었답니다. 그 아이는 그 다음부터 교실에 침을 뱉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도 교실에 침을 뱉는 청소년이 ‘나’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대는 내가 그를 대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는 나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아침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꽃을 보면 눈이 밝아지고 저절로 미소를 띄우듯이 밝은 얼굴로 반기는 미소를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마냥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다소 굳어진 얼굴에 경직된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내가 미소를 짓는 만큼 그도 미소 짓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는 만큼 그도 고개를 숙입니다.
때론 몹시 당황하면서 순식간에 경직된 몸과 마음은 풀립니다. 그리곤 오히려 자신이 이런 상황을 당황해합니다. 저를 지나가면서 다시 굳어지는 얼굴을 볼 때도 있습니다. 조금은 안쓰럽기도 합니다. 인사를 하면서도 아니! 내가 인사 받으려고 친절한 모습을 보려고 인사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친절한 미소와 태도에 상대의 기분도 밝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청소년이 그렇듯이 어른도 아직 자신이 누군지 정해진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규정될 수 없습니다.
아니 나는 어떤 사람도 되지 않고 당신도 어떤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대에 따라서 역할에 따라서 인연에 따라서 나투는 모습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친절한 사람이기를 원한다면 내가 그를 친절한 사람이라고 보고 믿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혹시 속더라도 성공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손해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연 많이 만나는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글 | 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명상 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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