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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밭 가는 농부에게서 삶의 고통을 보다
2020년 04월 01일 (수) [조회수 : 22]
   
 

나는 카필라 왕궁터를 나왔다. 정문 밖으로 나가 들판을 잠시 걸었다.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저만치서 인도의 아낙네들이 바구니를 옆에 끼고 밭에서 뭔가를 캐고 있었다. 나는 밭둑에 앉았다. 2600년 전 싯다르타가 어렸을 때도 저 풍경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왕자도 이곳에 앉아 저런 풍경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싯타르타 왕자는 나자마자 엄마를 잃었다. 이모가 대신 그를 키웠다. 그렇다 해도 ‘엄마의 결핍’을 절감하며 청소년기를 보냈을 터이다. 룸비니 동산은 카필라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다. 어쩌면 그는 간혹 룸비니를 찾아와 ‘기억조차 못하는 엄마의 자취’를 떠올리곤 하지 않았을까. 이런 ‘결핍감’ 때문이었을까. 청소년기의 싯다르타는 남달리 ‘생각이 깊은 아이’로 전해진다.
팔리어 경전에는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일화가 기록돼 있다. 2600년 전 인도에서는 봄마다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고조선과 부여와 삼한, 삼국시대에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카필라 왕국도 그랬다. 봄에 씨를 뿌리기 전에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를 치렀다.

숫도다나 왕은 왕자를 데리고 이 행사에 참석했다. 싯다르타에게는 궁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왕은 제사를 주관했다. 싯다르타는 홀로 그 자리에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들판의 풍경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한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고 있었다. 농부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인도의 여름은 낮에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우기가 아니면 비도 내리지 않는다. 먼지가 풀풀 나는 밭을 농부는 지친 얼굴로 갈고 있었다.

농부가 부리는 소도 마찬가지였다. 밭 가는 일과 더운 날씨에 지쳐 헐떡거리고 있었다. 농부는 계속 채찍을 내려쳤다. 멍에를 진 소의 목이 졸려서 피가 흘러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경전에는 “그걸 본 싯다르타는 슬픔을 느꼈다”고 기록돼 있다. 나는 ‘슬픔’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그 슬픔이야말로 훗날 출가의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또한 그 슬픔이야말로 보리수 아래 깨달음의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삶의 근원적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고단한 노동으로 점철된 농부의 삶, 날마다 쟁기를 끌어야 하는 소의 운명에서 싯다르타는 ‘슬픔’을 느꼈다. 거기서 어린 싯다르타의 심성이 엿보인다.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기 전이지만, 싯다르타는 이미 남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가슴을 갖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새가 내려왔다. 쟁기가 지나간 흙에서 나온 벌레들을 새가 마구 쪼아먹었다. 싯다르타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의 친족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가슴 아파했다. 싯다르타가 본 것은 삶과 죽음의 노골적인 현장이었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 세상에 대한 비정함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절감하지 않았을까.
놀라운 대목은 그 다음이다. 슬픔을 통감한 왕자가 간 곳은 뜻밖에도 잠부나무 아래였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기도 했다. 싯다르타는 잠부나무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 인도의 요가 자세인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색에 잠겼다. 당시 인도의 전통 종교는 힌두교였다. 사람들은 다들 힌두교를 믿고 있었다. 왕자였던 싯다르타는 힌두교 경전인 베다 문헌을 달달 외울 만큼 힌두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러니 명상과 사색은 왕자에게 어려서부터 친근한 행위였을 터이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서, 곧장 취한 태도가 사색이었다.
밭둑을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들판에는 띄엄띄엄 높다란 나무가 서 있다. 저 어디 쯤에 잠부나무도 있었겠지. 그 아래 앉아 왕자는 눈을 감았겠지.’  경전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또 있다. 왕자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헐레벌떡 신하들이 뛰어왔다.  그들이 목격한 건 왕자의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그 자리에 온 숫도다나 왕이 왕자의 모습을 보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고 한다.

실제 왕이 왕자에게 절을 했는지, 아니면 훗날 붓다에 대한 찬탄 때문에 가필됐는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싯다르타가 어린 시절에 이미 명상과 사색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고, 남들의 고통과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심성을 가졌음은 알 수 있다.

   
▲ 45년간 길렀다는 머리를 풀어헤친 사두

길을 가다가 나는 한 나그네를 만났다. 외모가 아주 특이했다. 머리를 둘둘 말아서, 몇 겹씩 칭칭 감아 올리고 있었다. 마치 바가지만한 소라껍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그를 ‘사두(Sadhu)’라고 불렀다. 인도를 순례하다 보면 곳곳에서 사두를 만난다. 옷은 주로 아랫도리만 가린 채 지팡이를 짚고서 세상을 떠도는 순례자다.
나는 그에게 가서 합장했다. 그도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얼마 동안 머리카락을 길렀나?”라고 물었더니 “45년간 길렀다. 단 한 번도 깎지 않았다”고 답했다. 궁금해서 감아 올린 머리를 한 번 풀어봐 달라고 했다.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을 푸는 데 마치 굵다란 나무에서 넝쿨이 뻗어나오는 듯했다. 오른팔로 중간쯤 거머쥔 머리칼을 어깨 위로 올렸는데도, 나머지 머리칼은 땅바닥에 닿았다. 턱수염도 그랬다. 똘똘 말아놓은 턱수염을 풀었더니 배꼽까지 내려왔다. 그에게 그건 ‘세월’이었다.

사두는 “시바신을 섬긴다”고 말했다. 시바는 힌두교에서 ‘파괴의 신’이다. 동시에 우주의 근원을 상징하는 신이다. 힌두교에는 3억이 넘는 신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신들이 존재하기 전에 시바신이 있었다. 그러니 인도인에게 시바신은 ‘본래부터 있는 신’이다.

오랜 옛날부터 인도에는 집을 뛰쳐나와 남은 생을 수행자로 사는 전통이 있었다. 사두 역시 그랬다.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고, 나이 들어 은퇴하면 경제적 기반을 후손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집을 나와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떠돌며 수행자의 삶을 산다. 그게 ‘사두’다. 현재 인도에는 약 500만 명의 사두가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TV가 없던 시절에는 사두가 ‘세상 뉴스’를 전하는 이들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마을 밖 세상 소식을 전했다. 아울러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법문도 함께 했다. 사두가 찾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늘 새로운 소식과 이야기를 고대하며 모여들었다. 뉴스와 법문을 들은 대가로 사람들은 사두에게 음식을 보시했다.
나는 사두를 보면서 아주 옛날부터 인도에 내려오던 ‘출가 전통’을 봤다. 그 밑에는 뭐랄까, 진리에 대한 근원적인 목마름이 있었다. 그런 목마름의 전통이 역사 속에서 줄기차게 내려오는 나라가 또한 인도였다. 싯다르타는 그런 나라에 태어났다.

나는 버스를 타고 인도에서 국경을 지나 네팔 영토로 들어갔다. 그곳에 또 다른 카필라바스투 왕궁터가 있었다. 이 왕궁의 동서남북에 나있는 성문은 불교사에서 유명하다. 싯다르타가 이 문들을 들고 나며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본질적 고통을 목격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궁금했다. 유적은 지금 얼마나 남아있을까.

 

   
▲ 인도의 엘로라 석굴에 있는 불상의 가부좌 모습
   
▲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의 모습
   
▲ 인도의 푸른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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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이제, 마음이 보이네』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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