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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11)
2020년 03월 01일 (일) [조회수 : 154]
   
 

그리운 어머니.
조만간 이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십 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했네요. 이사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상의 사건입니다. 이사 준비부터 이사, 이삿짐 정리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래도 어느 책에서 읽은 ‘성직자가 항상 준비해야 하는 세 가지는 설교, 이사, 죽음’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가 불자들도 갖추어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설교는 늘 부처님의 정법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고, 이사는 자신의 터전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비우는 일이고, 죽음의 준비는 현재의 삶을 간결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스님을 운수납자(雲水衲子)라 부르는 것에도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담겨있지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집착에서 벗어나 물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진리를 전하는 구도자.

이사는 피곤한 일이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와 죽음은 본질적으로 떠남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지요.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욕심을 비우고 가볍게 떠나려고 합니다. 이사를 앞둔 사람들도 그간 쓸데없이 사 모은 짐들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되도록 짐을 줄이려고 노력하지요. 제가 앞으로 몇 번의 이사를 더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떠안고 있는 짐들을 점점 더 줄여나갈 생각입니다. 사실 벽을 가득 채운 책 말고는 제 짐이라 할 만한 것도 없지만, 그 책마저도 가볍게 던지고 떠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한국불교의 산소, 보현보살

어머니, 오늘은 보현보살에 대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보현보살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불자는 없겠지만, 대중적으로 신행되는 보살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현보살은 한국불교를 가장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단단한 반석과 같은 보살입니다. ‘수십 년간 불자로 살면서 보현보살에게 귀의하거나 기도를 올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었는데, 뭐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현보살은 한국불교의 산소다.’

산소는 인간이 숨 쉬며 생존하는데 있어 가장 기초적 바탕이지요. 그러나 산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무한하게, 또 공짜로 주어진다고 생각하기에 평소에 산소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보현보살이 한국불교의 산소’라는 말은 보현보살의 정신이 스님들의 법문이나 의례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불자들의 신심과 수행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그래서 보현보살에 대해선 조금 깊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보현보살의 정의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보현(普賢)은 범어 ‘사만타바드라’를 번역한 것입니다. 사만타는 세상 모든 곳에 두루두루 있다는 뜻입니다. 바드라는 선함과 길함을 의미하지요. 즉 보현의 문자적 의미는 세상 모든 곳에 그 선함과 덕행이 두루두루 미쳐서 길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보현보살이란 존재의 참 뜻을 파악하기는 힘듭니다. 보현보살을 중요하게 다루는 대표적 경전이 《화엄경》인데, 경에서 보현보살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보현’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보현보살은 여러 가지로 몸을 나타내어
온 법계에 두루두루 가득하고
모든 삼매와 신통과 방편의 힘으로
부처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여 걸림이 없다.
보현보살의 몸은 허공과 같아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중생의 몸으로 나타나신다.

위에서 보시듯 보현보살이 삼매와 신통으로 모든 세상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이유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지요. 보현보살을 흔히 ‘대행(大行)’ 보현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대행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닌 중생제도의 크나큰 원력(願力)을 실제로 행하고 드러내는 보살이란 뜻입니다. 보현보살의 드넓은 행(行)에는 중생구제라는 거룩한 원(願)이 반드시 포함되어있습니다. 원이 빠진 행이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이가 목적지에 대한 생각이 없이 무작정 노를 젓는 일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보현보살 ‘대행’은 반드시 ‘행원(行願)’이 되어야 의미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원이란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보현행원품〉에서 나온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는 〈보현행원품〉을 불자가 갖추어야 할 실천수행 지침으로 매우 중시해왔습니다. 고려 때 균여스님부터 근래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늘 <보현행원품>을 바탕으로 원력을 세우고 실천하라고 권하셨지요. 그렇다면 <보현행원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보현행원품의 내용

어머니는 <보현행원품>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십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요? 어머니뿐만 아니라 〈예불대참회문〉이란 책을 펴놓고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를 차례차례 부르고, 또 참회문의 끝부분에 있는 ‘보현행원위신력, 보현일체여래전’과 같은 구절을 읊으며 절을 해 본 불자라면 이미 <보현행원품>의 내용을 접해온 것입니다. <예불대참회문>은 <보현행원품>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불대참회문>을 통해 108배를 할 때마다 보현보살의 행원을 늘 외우고 되새기며 참회를 해온 것이죠. 보현보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발원과 수행의 근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먼저 <보현행원품>이 어떤 경인지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화엄경》부터 이야길 시작해야 합니다. 《화엄경》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60권 분량으로 이루어진 《화엄경》과 80권으로 이루어진 《화엄경》이 있지요. 60권 화엄, 80권 화엄 등으로 줄여서 부릅니다. 60권 화엄이 먼저 중국에서 번역되었기에 구(舊)화엄경이라 하고, 80권 화엄이 나중에 번역되어 이를 신(新)화엄경이라 부르기도 하구요. 60권 화엄이 전체 34품으로 구성된 데 비해, 80권 화엄은 39품으로 분량이 조금 더 늘고, 각 품의 명칭이 미세하게 달라졌지만, 80권 화엄과 60권 화엄은 그 내용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글로 번역된 《화엄경》은 대개 80권 화엄경을 토대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두 종류의 《화엄경》에 더해서 40권으로 편집된 《화엄경》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분량이 많이 줄었지요? 기존 《화엄경》의 <입법계품>, 즉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순례하는 부분만 뽑아서 편집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를 보통 40권 화엄이라 부르지요. 그런데 왜 <입법계품>만 뽑아서 별도의 경전을 만들었을까요? 40권 화엄의 편찬자 입장에서는 화엄대경의 골수가 선재동자와 선지식의 만남 속에 모두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재동자가 그 중요한 53명의 선지식 순례의 마지막에서 만나는 이가 바로 보현보살입니다. 기나긴 순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선지식이 보현보살이라는 것은 상징적이지요.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서 열 가지 지혜바라밀을 체득하게 되고, 평등의 불가사의 해탈과 자재함에 이르게 됩니다. 한 마디로 부처님의 견줄 데 없는 평등하고 올바른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이를 통해 53명의 선지식을 대표하고 선재동자를 종국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이가 보현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법계품>만 다룬 40권 화엄에는 60권 화엄이나 80권 화엄에는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명칭의 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현행원품>입니다. <보현행원품>은 보현보살의 10대 발원과 그 발원을 어떤 마음으로 유지하고 행하는지에 관해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80권 화엄경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입법계품>이 40권 화엄경으로 압축되고, 다시 40권 화엄경의 선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보현보살의 발원이 <보현행원품>에 담겨있으니, 예부터 사람들은 40권 화엄경 가운데 <보현행원품>만을 다시 떼어내 하나의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시켰지요. 화엄대경의 골수가 곧 <보현행원품>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보현행원품>이 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한국의 수많은 고승들에 의해 권장되고 신행되었는지 살포시 느낌이 오시지요?

<보현행원품>은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높고 넓은 공덕을 전제로 불자가 그러한 공덕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행과 원을 닦아야 하는지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보현보살 10대원이라고 하는데, 그 열 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
②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③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④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는 것
⑤ 다른 이가 행하는 공덕에 기뻐하는 것
⑥ 부처님께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
⑦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길 청하는 것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
⑨ 항상 중생을 따르는 것
⑩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중생을 위해 회향하는 것

그리고 <보현행원품>은 이 열 가지 원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지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에 이어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다시 봄이네요.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띄우는 들판의 풀들처럼 어머니의 마음 밭에도 푸르고 싱그러운 생명의 새싹이 돋아나길 아들이 기원합니다.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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