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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 가라앉히기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15)
2020년 03월 01일 (일) [조회수 : 58]
   
 

부처님께서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혼탁한 세상’이라는 말을 곧잘 합니다. 그럼 ‘혼탁하지 않은 세상, 맑고 깨끗한 세상’은 과연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을까요?
혹자는 요순(堯舜)의 태평시대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그때가 좋았는데~’라며 한숨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런 부류는 소위 ‘좋은 세상’이 과거에 있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좋은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에 쉽게 한숨을 짓습니다.
또 혹자는 꿈처럼 황홀한 이상향에 대해 외치면서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며 열변을 토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소위 ‘좋은 세상’이 미래에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그 좋은 세상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에 대해 늘 투덜거립니다.
또 혹자는 ‘여기는 더럽고 혼탁하지만 저기는 맑고 깨끗하다’ 여기면서 ‘저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러워합니다. 눈길이 다른 곳에 사로잡힌 그들은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자신을 초라하다 여깁니다.
좋은 세상, 맑고 깨끗한 세계, 행복의 땅을 과거나 미래,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찾는 사람은 행복한 세상에 대한 갈증에 시달릴 뿐, 끝내 그들이 말하는 행복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합니다. 그들은 좋은 세상, 맑고 깨끗한 세계, 행복의 땅이 지금, 여기에 이미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맞습니다, 부처님. 저 역시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저의 삶은 메마른 대지를 내달리는 사슴과 같았습니다. 소위 ‘문제’를 해결해 보겠답시고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고, 이런 말 저런 말들을 늘어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꼬이고, 상황은 더욱 어지러워지기 십상이었지요. 그런 분분(紛紛)한 생각과 분분한 말과 분분한 행동들이 먼지만 더 피우는 짓이라는 것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처음 부처님을 뵈었을 때, 저에게 ‘침착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던 까닭을 이제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소위 ‘문젯거리’를 토로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 조바심은 상황을 악화시키기가 쉽지 개선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뿌연 흙탕물이 있습니다. 혼탁한 그 물로는 밥도 지을 수 없고, 차도 끓여 마실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흙탕물을 맑은 물, 유용한 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가만히 두고서 우선 흙탕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조바심을 냅니다. 그래서 나름 ‘맑아지게 할 방법’을 강구한답시고, 막대기를 들고서 왼쪽으로 저어보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저어보기도 하고, 마구 흔들어도 보고, 그래도 맑아지지 않으면 ‘이 물은 못 쓰는 물이다’고 하면서 땅에 쏟아버리고 다른 물을 찾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행동들이 물을 맑게 하는 바른 방법일까요? 이런 일련의 행동과 선택들은 도리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우선 안심시키고, 침착해야 한다고 다독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상황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것을 소위 ‘문제’라고 부르며 고뇌苦惱합니다. 즉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뇌의 원인, 자신이 괴로운 까닭이 현재의 상황 때문이라 여깁니다. 이럴 때 흔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며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반응합니다. 이는 현재의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요동칩니다. 용납되지 않는 상황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냥 그렇게 고뇌할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 하며 자신의 고뇌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보다 그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긴 봄 가뭄이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농부가 볍씨를 파종하고 모내기할 시기를 기다렸는데, 단오가 지나고 6월 7월이 되도록 제대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농부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상황이 무척 곤욕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 현명한 농부와 어리석은 농부가 판가름 납니다. 
‘내 70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해는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며 하늘을 원망하거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당장 비가 쏟아지게 할 방법을 찾는다거나, ‘올해 농사는 이미 망쳤다.’면서 술병을 차고 신세한탄이나 늘어놓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농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메마른 땅에도 농사지을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벼농사를 망쳤더라도 그 땅에 가뭄에 강한 콩이나 옥수수를 심는다면 현명한 농부일 것입니다.

어리석은 농부와 현명한 농부가 그 길을 달리하게 되는 분기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예년과 달리 비가 내리지 않는 그 뜻밖의 상황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다음 행동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사람은 불만을 털어버리고 다음을 준비하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땅치 않은 그 상황에 주저앉아버립니다.
농부에게 닥친 긴 가뭄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갖가지 뜻밖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는 하늘을 원망하는 농부처럼 고뇌만 키울 뿐입니다. 한 세상 살자면 뜻밖의 일들이 닥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또 나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뜻밖의 일로 고뇌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그 고뇌를 키우는 행동을 멈추는 것입니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공연히 부산떨 것 없습니다. 잘못된 일은 없습니다. 다만 내 예상을 벗어났을 뿐입니다.

또한 더 면밀히 관찰해 보면 예상을 벗어난 그 일, 큰 문젯거리나 잘못처럼 여겼던 그 일 역시 오묘한 인연의 물결일 뿐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욕구’에 위배되기에 문제라 하고 잘못이라 여겼던 것이지, 나의 생각과 나의 욕구를 잠재우고 바라보면 그것은 본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기준’ ‘나만의 자’ ‘나만의 저울’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엔 잘못된 것도 바람직한 것도 없고, 훌륭한 존재도 부족한 존재도 없습니다. 그 모두가 눈병이 들었을 때 아른거리는 허공의 꽃과 같을 뿐입니다. 나아가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 깨달은 부처와 우매한 중생, 성공과 실패, 행복한 삶과 고뇌하는 삶, 심지어는 삶과 죽음조차도 지난밤 꿈속의 일과 같을 뿐입니다.
이렇게 버려야 할 것이 없어 버릴 일이 없고, 취해야 할 것이 없어 취할 것이 없고, 산만한 것이 없어 안정시킬 일이 없고, 고요한 것이 없어 집중할 일이 없는 것, 이것을 저는 선정(禪定)이라 합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글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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