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수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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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부처님이 되는 길
2020년 03월 01일 (일) [조회수 : 76]
   
 

“저는 제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그런데 너무 미워요!”
“저는 사랑하는 마음만 느끼고 싶고 너무나 사랑하는 모습만 나누고 싶은데 문득 찾아오는 미운 마음은 저를 너무나 힘들게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동안 어떻게 해 오셨나요?” “제 큰 아이는 천재에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열심히 아이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그것을 따라오지 못할 경우에는 화가 났어요. 아이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왜 엄마가 화를 내는지. 그것이 더 답답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옆에 있던 또래 아이를 키우던 엄마도 자신이 최근 겪은 마음들과 어찌 그리 똑같냐고 공감을 합니다. 대화를 마치곤 두 분이 나란히 대화하면서 걸어갑니다. 마음을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입니다. 이 대화가 우리의 일상의 대화이고 일상에서 겪는 일이지만 왜 그 마음을 경험하게 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진 않습니다.

한 번 우리도 그 분들의 마음을 경청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첫 번째, 자기 아이들은 너무나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경험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인지 뭐든지 첫 번째 경험을 기록하려고 하고 기억하려고도 합니다. 그 느낌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이겠지요. 그러나 그 첫 번째 느낌을 다시 만났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지리산도 정상에 올라보니 “와! 여기가 정상이구나!”하는 느낌이 있고 나서는 그 느낌이 바로 사라지고 “아이고! 이 먼 길을 어떻게 내려갈까?”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까지 한 번밖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차 싶습니다. 제가 경청과 공감의 자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의 공감과 경청의 마음 자세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그 첫 번째 아이와의 애정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고 그것에서 빠져나오라고 설득하려고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첫째 아이를 만났을 때 얼마나 좋았을까요? 신도 하지 못하는 나의 온전한 분신이자 또 하나의 나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을까요? 이 아이를 남들에게도 인정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 계획에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를 볼 때에 내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이렇게 그 엄마의 경험했던 마음을 충분히 그리고 그때 경험했을 때보다 더 넓고 깊게 살피려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공감하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경험을 좀 더 이야기합니다.

이야기하는 과정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과정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 마음이 남아 있지 않도록 충분하게 공감하고 경청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아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는 어떤 표정이었나요? 아이가 어떤 마음을 경험하던가요? 엄마는 그때에서야 아이를 볼 수가 있게 됩니다. 나의 분신이 아니라 몇 살짜리의 아이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경청하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이야기를 온전하게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꾸 떠오르는 나의 기억들이 편집되게 하고 나의 경험들이 이렇게 하면 벗어날 수 있어! 하며 가르쳐 주라고 끊임없이 부추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돕는 것이라고 정당화시킵니다. 그냥 하염없이 들어주면 되는가요?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경청 자세를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온전히 그 마음에 주의를 두었던가요? 그가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고 그 기쁨이 다했을 때에 나도 따라서 다 했던가요? 그가 슬퍼할 때 나도 슬퍼하고 그의 슬픔이 다했을 때에 나도 슬픔이 다 했던가요? 아니면 그가 슬퍼할 때에 슬픔을 그치도록 하려 하진 않았던가요? 우린 무의식중에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 자신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신 차리지 못하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제가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데 스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스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때가 함정입니다.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라고 대화가 진행되면 그 말의 함정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논쟁이 되거나 강요가 되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는 가급적이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내가 이런 저런 경험들로 안내를 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을 찾아 덜어내고 싶은 것입니다. 집착하던 마음을 대화로 덜어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고 나니 지혜가 맑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지혜가 날 때까지 도와주는 것이 공감이고 경청입니다. 부처님을 뵈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순간 내가 들고 있던 고집스런 마음을 단번에 내려놓게 되는 일화를 경전에서 자주 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부처님이 되는 길은 “경청”이고 “공감”일 것입니다.

글 | 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명상 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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