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30 토 21:05
> 뉴스 > 기획칼럼 > 아들이 들려드리는 불교이야기
     
보살(10)
2020년 02월 01일 (토) [조회수 : 16]
   
 

그리운 어머니.
얼마 전,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를 다녀왔습니다. 붓다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지요. 정암사를 찾은 날은 밤새 눈이 꽤 내린 다음날 아침이었는데, 누군가 이미 수마노탑까지 오르는 돌계단을 정성스럽게 쓸어두었더군요. 덕분에 큰 불편 없이 올라가서 탑에 예경드릴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보시이자 예불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문득 수십 년 전, 성철스님이 계신 백련암에서 아비라 기도를 할 때 기억이 떠올랐지요. 아비라 기도 중에 눈이 펑펑 내렸는데, 남자 재가자들은 기도 대신 스님들과 함께 백련암 앞의 수 백 미터 산길을 싸리 빗자루로 쓸었지요. 그 때 알았습니다. 진정한 기도란 일상을 벗어난 별도의 수행이 아니라, 늘 일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오늘은 이 정암사와 관련이 깊은 문수보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법왕자, 문수사리 보살

어머니, 문수보살을 거론할 때 항상 짝으로 언급되는 보살이 있지요. 네, 맞습니다. 보현보살이지요. 보통 문수·보현이라 묶어서 부릅니다.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순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관세음보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요. 보현보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문수보살만 살펴보겠습니다.
문수보살의 이름은 ‘문수사리’보살입니다. 문수사리는 범어 만쥬슈리를 한자로 음차한 말인데, 만쥬란 신묘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과 상서로움을 뜻해요. 그래서 만쥬슈리를 뜻으로 풀면 묘길상(妙吉祥) 혹은 묘덕(妙德)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 익숙한 문수(文殊)란 말은 단순히 만쥬라는 소리만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문수보살의 특징까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지요. 글월 문(文)에 특별할 수(殊)라는 이름을 쓰는 보살은 글자만 보아도 뛰어난 지혜를 지닌 보살임을 짐작할 수 있지요. 문수보살은 여러 나라에서 여러 모습으로 조성되었는데, 중국 문수처럼 어리석음을 잘라내는 칼을 쥔 모습도 있고, 석굴암 문수처럼 찻잔을 손바닥에 올린 모습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문수(文殊)라는 뜻을 가장 명확히 전달하는 형상은 경전을 든 모습입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 내부에는 경전을 든 문수보살상이 세워져 있는데, 불교종단 학교란 정체성과 진리탐구의 장인 도서관을 한 번에 표상할 수 있는 분이 문수보살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요. 왜 아이의 모습일까요? 범어인 만쥬슈리에는 ‘영원한 젊음’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한 널리 신행하는 『법화경』에서 문수보살을 ‘문수사리 법왕자(法王子) 보살마하살’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법왕자’란 범어 ‘쿠마라부타’를 번역한 말로, 진리의 왕이신 석가모니 이후에 정법을 이어받을 젊은 왕자를 뜻합니다. 오대산 상원사에 모셔진 쌍상투를 튼 문수동자상국보 221호은 문수보살이 아이로 변해 세조의 등을 밀어준 인연과 동시에 진리의 법왕자로서의 의미가 함께 담겨있음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수보살은 왜 사자를 타고 있을까요? 백수의 왕인 사자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사자의 울부짖음인 사자후(獅子吼)는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비유지요. 사자의 울음소리에 뭇 짐승들이 놀라고 숨어버리듯,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해 어리석음은 자취를 감추고 중생들은 세간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 문수보살이 타고 있는 사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지혜를 잇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유마경』과 문수보살 10대원

오늘날 한국에서 몇몇 문수성지를 제외하고는 문수보살을 중심에 두고 신행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입시철만 되면 본인이 혹은 자녀에게 문수기도를 권하는 불자들이 꽤 있습니다. 문수라는 이름이 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문수기도가 그런 가피가 없진 않겠지만, 문수보살의 지혜는 시험에 필요한 지식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어머니, 문수보살의 지혜란 바로 무분별 ‘반야’의 지혜입니다. 문수보살이 『도행반야경』과 같은 초기 반야부 경전에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지요. 특히 중도中道의 불이不二법문을 대표하는 대승경전인 『유마경』에서 문수보살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요. 경에서 석가모니는 공空, 반야의 지혜 대신에 소승의 불법만 고수하는 제자들을 깨우치게 하려고 유마거사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유마거사를 만나려고 하지 않아요. 모두 일전에 유마거사와 법거량을 하다가 말문이 막히고 질책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보살들마저도 유마거사를 만나길 꺼려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문수보살에게 명하여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가라고 하시지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를 대신해 수많은 제자와 보살들을 이끌고 유마거사를 만나 문답하면서 불이不二의 반야법문을 완성시켜 나갑니다. 문수보살이 중도나 반야의 뜻을 잘 몰라서 유마거사에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보살은 대중들을 위해 유마의 법문을 이끌어내고 조율하는 사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수보살이기에 여러 대승경전에서 부처님 말씀을 정리하고 다시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수보살은 오로지 지혜만을 표상하는 보살일까요? 『만주실리대교왕경』이란 경전에는 문수보살 10대원이란 것이 등장하는데, 내용 상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문수보살을 헐뜯고 미워하고 속이거나 죽이고, 삼보를 비방하는 모든 중생까지도 갖은 방편으로 보리심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내게 하여 부처님의 지혜와 정각을 이루게 한다.
둘째, 악행을 저지르는 중생을 위해 함께 윤회하며 지옥에 들기를 마다하지 않고, 항상 가난하고 장애를 지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구제한다.

문수보살의 원은 모두 중생을 향해 있고, 특히 자신을 해하려는 악인과 불우한 이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절집에선 ‘인연이 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제도할 수 없다’란 말을 자주 쓰지만, 문수보살의 열 번째 서원은 인연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고 마치 허공처럼 모든 중생을 품겠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보살의 자비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수의 10대 서원을 통해 지혜와 자비가 본래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문수보살과 자장율사 설화

어머니, 문수보살과 관련된 영험이나 설화들을 분석해보면 위에서 살펴본 문수보살 10대원과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문수보살은 늘 늙거나 추하거나 미치거나 가난한 모습, 즉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로 변화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대부분은 겉으로 드러난 형상만 보고선 그가 문수보살임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 『삼국유사』에 기록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에 관한 이야기는 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장율사는 중국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받아와서 이 땅에 불보사찰인 통도사를 비롯해 여러 적멸보궁을 세우고, 율사로서 스님들에게 계를 주는 금강계단을 설립하고, 또 최초로 문수신앙을 소개한 스님입니다. 그러니까 중요성으로 보아서는 한국불교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지요. 그런데 자장율사마저도 만년에는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다소 길더라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삼국유사』 ‘자장정율자장율사가 율법을 정하다’조의 관련 전문을 옮겨볼까 합니다. 

자장은 만년에 서라벌을 떠나 강릉으로 와서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살았다. 모습이 괴이하게 생긴 승려가 꿈에 나타나서 ‘내일 대송정(大松汀), 큰 소나무가 있는 물가에서 그대를 만날 것이다.’하였다. 자장이 그곳에 가니 문수보살이 감응하여 왔다. 자장이 불법의 요체를 물으니 문수는 ‘태백산 갈반지(葛蟠地), 칡넝쿨이 서린 땅에서 다시 만나자.’하고는 자취를 감췄다. 자장이 태백산에서 갈반지를 찾다가 큰 구렁이가 나무 아래에 서리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석남사지금의 정암사를 세우고 문수를 기다렸다. 이때 남루한 옷을 입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멘 늙은 거사가 절을 찾아와 시자에게 ‘자장을 보러왔다.’고 말했다. 시자는 ‘내가 큰스님을 모신 후 자장이라 부르는 놈은 처음 보았다. 너는 어떤 놈이기에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게냐.’라고 말했다. 거사는 시자에게 ‘들어가 자장에게 전하라.’고만 했다. 시자가 상황을 알리자 자장은 ‘필시 미친놈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시자를 시켜 내쫓게 했다. 이에 거사는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아상(我相)을 지닌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느냐.’고 말하고 삼태기를 거꾸로 들어서 터니 강아지는 사자 보좌(寶座)가 되고, 거사는 그 위에 올라타고는 빛을 발하며 사라져버렸다. 자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빛을 따라 남쪽 고개로 올라갔으나 따라갈 수 없었다. 자장이 산 위에서 몸을 던져 죽으니 화장하여 유골은 석혈(石穴) 속에 모셨다.

일연스님이 풀어낸 이 이야기의 핵심은 ‘나’라는 상(相)이 있는 한, 지혜문수보살를 만날 수 없고, 진정한 부처님의 사리는 무분별 중도 속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문수보살 친견은 내 곁의 소외되고 아픈 이웃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할 때 이루어지는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체중생을 향한 지혜와 자비로 하루하루 충만하게 채워나가시길 아들이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 | 강호진 (작가)
글 | 강호진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조계사뉴스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 법요...
제14기 목탁 집전 교육 수료식 개최
가족이 함께 연등 만들기
문화
방송
조계사 정초7일기도회향 원행스님 ...
조계사 정초7일기도입재 지현스님 ...
조계사 일요법회 진우스님 법문(2...
기획칼럼
사회복지전법팀 활동 10년을 넘기며
보살(11)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144)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 Tel 02-768-8600 Fax 02-720-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수용
Copyright 2010 미디어조계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