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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란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14)
2020년 02월 01일 (토) [조회수 : 36]

집으로 돌아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되새겨보았다. 부처님의 말씀은 정말 걸레와 같았다. 불쾌함을 유발하는 액체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걸레로 닦으면 단박에 그 불쾌함이 사라지듯이, 일상에서 탐욕과 분노와 교만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곧바로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명백하고, 매우 간단하고, 아주 유용한 이 삶의 방식을 여태 모르고 산 것이 후회스럽고, 또 그렇게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그랬다. 나는 불쾌함을 유발하는 액체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것을 스스로 닦아낸 적이 없었다. “누가 이런 더러운 것을 버렸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더러운 것을 버린 자’를 색출하기 위해 부산을 떨고, ‘더러운 것을 버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와 책임소재를 두고 갈등과 시비를 일으키고, ‘더러운 것을 버렸다고 인정하는 자’에게 “저 더러운 것을 당장 치워라!”라고 다그치며 살았다. 소위 ‘삶의 문제’라는 것들을 해결하려는 방법이 늘 이런 식이었다.

그랬다.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일련의 과정은 도중에서 멈춰버리기 일쑤였다. 그랬을 때, 그 ‘문제’로 인한 번민(煩悶)과 갈등(葛藤)은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나의 삶을 갉아먹곤 하였다. 설령 그 ‘문제’가 해결되고 그 문제로 인한 번민과 갈등이 사라졌다고 해도, 돌아보면 꽤나 긴 시간 동안 그 ‘문제’로 인해 시달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불쾌함에 시달리면서도 그 불쾌함을 해결할 방법은 “이것 밖에는 없다”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놀라웠다. 소위 ‘문제’라는 것이 발생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 ‘문제’를 바로 보기만 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닌데, 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번민이 어찌 있을까?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하고,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방식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그 방식을 나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고, 그 결과 또한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고 “신비하다” 혹은 “불가사의하다”라고 하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액체, 모든 번민과 갈등의 씨앗, 그것은 바로 ‘존재하지도 않는 막연한 나’였다. 그것만 닦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닦아낼 걸레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다. 나의 삶, 복잡다단하고 파란만장하게 여겨졌던 나의 삶, 스스로도 잘 정리가 안 되고 게다가 타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삶,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보니 너무나 간단했다. 여태 “내가 무엇을 보았다.” “내가 무엇을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한다.”라며 알고 살아왔다. 그래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안 그것에 대해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구상해 선택하고, 그 선택을 성취하기 위해 갖가지 행동으로 몸부림쳤다. 복잡하고 난해하다며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는데, 돌아보니 나의 삶은 사실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 분명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나’도 ‘무엇’도 없었다. 본래 없었다. ‘본다’는 작용 이전에 ‘보는 자’인 ‘나’가 이미 존재해 그것이 보는 것이 아니었고, ‘본다’는 작용 이전에 ‘보이는 대상’인 ‘무엇’이 이미 존재해 그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본다’는 작용 없이는 ‘보는 자’도 ‘보이는 무엇’도 없다. 그러니 ‘본다’는 작용의 주체라 여겼던 ‘나’, ‘본다’는 작용의 대상이라 여겼던 ‘무엇’은 근거가 없는 망상妄想, 즉 겁에 질린 사람이나 만나는 고갯마루 처녀귀신과 같은 것이었다. ‘나’와 ‘무엇’이 이미 근거가 없는 망상인데, 나와 무엇 사이에서 일어난 좋고 싫음 등의 온갖 감정과 옳고 그르다는 판단과 이럴까 저럴까 하는 선택과 되니 안 되니 하는 번민이겠는가? 그것은 몽땅, 정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몽땅 허구(虛構)였다. 안달부달 공들여 쌓아 올렸던 탑, 나의 삶이 그런 탑인 줄 알았는데, 그 밑바닥을 살펴보니 밑이 없는 허공이었다. 순간, 나의 삶은 한 순간에 와장창 몰락(沒落)했다.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에서 더 이상 번민과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본다는 이것, 듣는다는 이것, 느낀다는 이것, 생각한다는 이것은 인연의 물결, 광활한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에서 튕기는 물방울 하나, 인연만 닿으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튕기는 물방울 하나에 온 바다가 참여하고 있듯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인연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물방울이 바다에서 튕겨져 나와도 바닷물과 다르지 않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도 변한 것이 없듯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은 나타난다고 해도 없던 것이 생기는 게 아니고 사라진다 해도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나’와 ‘무엇’으로 쌓았던 허구의 성이 무너진 자리, 그 빈 뜰에서 광활한 인연의 바다를 목격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희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만약 보는 자를 ‘나’라고 표현하다면, 숨 쉬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나’라고 표현한다면, 소위 삶을 주체하는 자를 ‘나’라고 표현하다면, 그 ‘나’는 모든 시간 속에 항상 존재하고, 시방에 가득한 것이었다.

며칠 후, 다시 부처님을 찾아갔다.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자 부처님께서 활짝 웃으셨다.
“당신 얼굴이 참 맑아졌습니다.”
그도 따라서 활짝 웃었다.
“부처님께서 주신 걸레가 있지 않습니까? 몇 번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대번에 이렇게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그래요? 어떤 걸레로 무엇을 닦아냈습니까?”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모든 것은 인연의 물결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다.
“바로 그겁니다. 인연의 물결, 저는 그것을 때로 원각(圓覺)이라 표현합니다. 그래, 그 걸레로 무엇을 닦아냈습니까?”
“인연의 물결에는 ‘나’도 ‘너’도 ‘무엇’도 없습니다. 그것을 닦아냈지요. 아니지요. ‘닦아냈다.’는 말도 어폐가 있군요. 본래 없는데 닦긴 뭘 닦겠습니까? 있다고 착각했건 것뿐이죠.”
부처님께서 또 손뼉을 치셨다.
“눈병이 나면 허공에 꽃이 보이기도 하고, 달이 두 개로 보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건 본래 없는 것입니다. 나와 너, 감정과 생각, 번민과 갈등이 사실 허공에 핀 꽃과 같은 것입니다. 눈병만 나으면 허공에 핀 꽃과 두 번째 달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허공에 핀 꽃을 두고 마음에 든다느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왈가왈부할 것도 없고, 억지로 자르거나 뽑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요.”
“맞습니다, 부처님. 인연의 물결이라는 걸 수긍하자 그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도 개운해지는 게 온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 보이던가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깨끗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불만스럽던 세상이 너무나 맑고 투명하기만 합니다.”
부처님도 따라서 환하게 웃으셨다.
“그것을 청정(淸淨)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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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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