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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9)
2020년 01월 02일 (목) [조회수 : 15]
   
 

그리운 어머니.
저는 요즘 서울의 한 사찰에서 스님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강의의 형식이지만 함께 불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탐구하는 시간이지요. 불교에 대한 열정을 지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강의가 끝나면 스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불교공부는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이 더 많이 생기는군요.”
 강의는 제가 하고 있지만 사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것의 즐거움이지요. 만약 제대로 된 강의나 법문이라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자도 없고, 일방적으로 배우는 이도 없어야겠지요. 만약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이가 뚜렷하게 구분된다면, 그것은 훈계나 수험용 지식의 전달에 그칠 뿐, 불교적 지혜를 창출하는 장이 될 순 없을 겁니다. 교육은 늘 자기 자신에 대한 교육으로 귀결되어야하고, 우리가 서로를 서로의 스승이라 여길 때에만 불교의 지혜가 생겨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장보살, 김지장 스님

어머니, 오늘은 지난 시간 지장보살 공부에 이어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불리는 김지장(金地藏, 696~794) 스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지장(김교각) 스님은 지장보살을 깊이 신행하는 한국의 불자들에게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지요. 스님의 등신불을 친견하기 위해 신도들을 모아 중국 안휘성 구화산九華山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사찰이 한두 곳이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김지장 스님에 관련한 이적이나 신묘한 영험은 여기서 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풍성합니다. 어쩌면 어머니도 몇몇 이야기는 듣거나 보아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께 김지장 스님의 삶의 고갱이, 즉 이런저런 살을 발라낸 뼈대만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이는 김지장 스님의 행적을 정확하게 살펴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쳐버렸던 스님의 본모습을 기리고 생각해보기 위함이지요.

김지장 스님에 관련된 기록은 여럿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김지장 스님이 입적하시고 불과 18년 후에 만들어진 당나라 때 기록이 있는데, 바로 『구화산화성사기(九華山化城寺記)』입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자, 가장 근접한 시기에 쓰인 기록이니 신뢰할만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은 아래와 같이 시작합니다.

“승려 지장은 신라왕자 출신으로 성은 김金 씨다. 목이 유난히 솟은 기이한 골격으로 키는 7척의 장신이고, 그 힘은 보통남성의 두 배에 달했다. ‘세상의 여러 청정한 가르침 가운데 오직 불교의 수승한 진리만이 내 마음에 부합한다’라며 말한 후, 머리를 깎고, (신라에서 중국으로) 바다를 건너, 배를 버리고 걷다가 상서로운 구름에 쌓인 구화산을 보고서는 천 리길을 부지런히 걸어 나갔다.”

신라왕자 출신 김지장 스님은 이런 연유로 중국 구화산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합니다. 기록은 몇몇 사람이 우연히 산을 찾았다가 스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에서 홀로 굴에 앉아 눈을 감고 정진하는 지장스님을 만나게 되는데, 스님은 다리가 부러진 솥에 흰 흙과 쌀을 섞어서 끓여먹으며 수행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스님의 고행에 감복해서 재물을 기꺼이 보시했고, 이 소식을 접한 산 주변의 사람들 또한 나무를 베어서 스님의 거처를 마련해줍니다. 지장스님에 관한 소문은 신라 땅까지 전해져 많은 신라인들이 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지요. 빈궁한 살림살이에 갑자기 사람이 늘게 되자 스님은 바위 아래 밀가루와 같이 고운 흰 흙을 파내어 쌀과 섞어 대중들과 나누어 먹고, 겨울에는 땔감을 아끼기 위해 옷으로 버티지요. 문도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밭을 일구고 땔감을 구하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꾸려나갑니다. 이러한 지장스님과 제자들의 청빈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나 봅니다. 기록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지요. 

“지장스님 아래 대중들은 오직 스님께 법문을 청해 정신의 양식으로 삼고, 음식으로 생명을 기르지 않았으니, 남쪽지방에서는 그들을 고고중(枯槁衆)이라 부르며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위에서 ‘고고(枯槁)’란 고목같이 말라 비틀어졌다는 뜻으로 석가모니의 고행상처럼 뼈만 남은 육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고고중이란 가난한 삶에 굴하지 않고 치열한 구도를 이어나가는 지장스님과 그 문도들에 대한 존경의 말이지요. 여기까지의 기록을 보아선 지장스님이 비록 고매하고 존경스럽다 할지라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연결할만한 특별한 고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입적 이후의 이적이 남아있으니 기록을 계속 따라 가보도록 하지요. 

지장스님은 99세에 열반에 들게 되는데, 제자들이 함(函)에 스님을 결가부좌 자세로 3년간 모셨다가 탑에 안치하기 위해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때 스님의 모습과 얼굴빛은 변함이 없었고, 움직일 때에는 뼈에서 쇠사슬 소리가 났다고 『구화산화성사기』는 전합니다. 그리고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경전의 구절을 들어 지장스님이 보살의 경지에 이른 분이라는 의미를 담아냅니다.

“경전에는 ‘보살의 몸은 쇠사슬로 이어져 온 뼈에서 맑은 소리가 울린다(鉤鎖菩薩 百骸嗚矣)’라고 나온다.”

그러나 이 구절이 나오는 경전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쇠사슬과 보살이 합쳐진 ‘구쇄보살(鉤鎖菩薩)’이란 용어는 『대보적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등장하지요. 구쇄보살에 관해선 그 해석이 다양하지만, 구쇄해골(鉤鎖骸骨)이란 말과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살처태경』에는 석존이 미륵보살에게 ‘해골을 관(觀)하여 중생에게 윤회에 관해 알려주라’는 당부를 하자, 미륵보살은 자신의 신묘한 지팡이로 구쇄해골을 통통 두드려 뼈 소리를 듣고 그 속성을 분별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여기서 구쇄해골은 뼈만 남은 인간의 유해를 뜻합니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구쇄보살은 인간의 생사를 잘 분별하고 중생을 지혜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여하튼 쇠사슬과 보살은 중국불교에서 하나의 의미뭉치처럼 붙어 다니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이를 『법화경』과 관련한 대표적 영험담인 마랑(馬郎)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니 간단하게 축약하면, 마랑이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어여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방대한 『법화경』을 모두 외우고 결국 그 여인에게 혼인승낙을 받아냅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치르던 도중 여인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지요. 마랑이 여인의 시신을 땅에 묻고는 슬퍼하고 있는데 한 노승이 나타나 관을 열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때 관에 들어있던 것이 바로 황금 쇠사슬로 된 뼈(황금쇄골)였다는 것이죠. 물론 설화 속 그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쇠사슬이 중국에서는 보살의 상징처럼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인의 입장에서 김지장 스님의 몸에서 쇠사슬 소리가 났다는 것은 스님이 곧 보살이란 강력한 증거였던 것이죠.

어머니, 우리는 김지장 스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지장스님이 어떻게 지장보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장보살이 중국에서 스님으로 화현하셨다면 김지장 스님과 같이 청빈한 구도승의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교인은 지혜로써 법法을 잘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말하는 무분별(無分別)과 중도(中道) 또한 용수보살이 쓴 『중론』에서 보듯 ‘분별의 극(極)’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머니, 김지장 스님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것은 스님의 뛰어난 법력, 중생구제에 대한 염원, 그리고 중생들의 열망이 연기적으로 화합해 형성된 것입니다. 신라출신 이방인이란 약점을 극복하고 중국에서 수많은 이를 감화시킨 스승이자, 수행의 힘으로 이적을 행했던 김 지장 스님은 등신불로 남으므로 사람들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며 스님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대대적으로 받들어지고, 구도자의 영원한 사표가 되었습니다. 김지장 스님의 위상이 변모해 온 역사적 과정을 잘 살피다보면 당시 중국과 신라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각국 중생들의 바람[願]과 열망까지 읽어낼 수도 있겠지요. 이후 중국 구화산은 여러 스님들의 등신불을 모시게 되면서 등신불의 성지이자 지장신앙의 본산이 됐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새해에도 몸과 말과 뜻으로 복 많이 지으시고, 건강에 유념하시길 아들이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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