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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에서 꽃 피운 20여 년의 붉은 인연
붓다맘봉사팀
2019년 08월 02일 (금) [조회수 : 42]
   
 

●      장마를 앞두고 무더위와 습기가 절정으로 치달리는 7월의 목요일 아침. 잿빛으로 꾸물거리는 하늘을 보며 우산을 챙겨들었다.
‘아, 비 오면 어떡하지? 바깥에서 밥을 나누어줄 텐데……’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전화 받은 사람은 오히려 태평스럽고 쾌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비 절대 안 와요, 목요일이잖아요!”
전화기 너머에서 웃는 주인공은 붓다맘봉사팀의 박부득(정일화) 팀장이다. 아침 9시를 갓 넘긴 시각인데 벌써 음식을 준비하는 듯, 현장의 분주함이 전화기를 통해 건너온다. 목요일은 붓다맘봉사팀 무료급식 날이므로 오던 비도 뚝 그친다고 했다.

영등포쪽방촌(영등포구 경인로 96길). 4년 전, 처음 그곳을 방문했던 때의 충격이 떠올라 마음이 날씨보다 더 무거워진다. 대낮임에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좁은 골목과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비좁은 반 평짜리 쪽방에서 그림자처럼 누워 있던 사람들.

 

   
 

20여 년간 지켜온 목요일의 약속 

미리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영등포쪽방촌이 있다. 영등포 역사를 나와 파출소를 끼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부엉이 둥지처럼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열악한 환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공간이다.
더욱 씁쓸한 건, 얼기설기 판자로 엮은 달랑 한 칸뿐인 방 외에 변변한 부엌이나 화장실조차 없는 그 쪽방 월세가 30만 원 정도인데, 그런 집을 50여 채씩 가진 집 주인들도 있다는 현실이다.
한여름이라 마을 입구부터 악취가 풍겨 발 들여놓기가 꺼려졌다. 그런 곳에서 붓다맘봉사팀은 20여 년간 매주 목요일마다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목요일 무료급식을 빼먹은 적이 없다. 국내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그곳 사람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활동의 중심에 박부득 팀장이 있다.
“1998년경 김윤석 경감(마포경찰서)을 중심으로 30여명이 모여서 쪽방촌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회비를 걷어서 쪽방촌 주민 30명에게 매달 현금 3만 원과 쌀 한 봉지씩 나눠 줬는데, 그걸로 술을 사서 마셨어요. 밥솥도 없고 조리할 불도, 마실 물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다음에는 부탄가스와 냄비, 물 한 통씩 나눠 줬는데 반찬이 없으니 또 밥을 안 해 먹었어요. 4~5년 뒤에 일주일간 먹을 밑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에 담고 쌀과 라면 등과 함께 집집마다 배달했어요.” 
배달하는 날은 아침부터 당산동 낡은 건물 3층 옥상에 모여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된장국을 끓였다. 그런데 반찬을 만드는 봉사를 시작하자 초창기 회원들이 죄다 떨어져나가 결국 박 팀장과 현재 교무인 심원 김윤석 경감(마포경찰서)만 남았다.
하지만 2015년 쪽방촌으로 이사 올 때까지 반찬 만드는 봉사를 계속했고, 그러는 중에 청정화 조미라 총무와 대각심 송이화 재무, 배상만 이사, 백선이 봉사부장 등 새 봉사자들이 합류했다.
한 달에 반찬 재료값과 전기요금, 연료비 등 약 2백만 원이 들어가는데, 후원금은 1백만 원에 불과했다. 영등포시장 채소가게에서 가져온 시래기로 된장국을 끓이고, 강서수협과 푸드뱅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계산상으로는 적자였지만, 큰돈이 필요할 때면 독지가가 나타나거나 후원금이 들어와서 큰 단체나 사찰의 도움 없이 근근이 활동할 수 있었다.

 

   
 

쪽방촌 잔치국수의 의미

붓다맘봉사팀은 2015년 3월 14일 창립법회를 갖고 정식 출범했다. 그간 활동해온 (사)쪽방도우미봉사회(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산하) 소속 단체로, 조계사 포교사회본부 팀에 적을 둠으로써 사중에서 국수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16년 4월 18일, 6~7개월 작업 끝에 쪽방촌 맨 안쪽 철도청 땅에 11평 규모의 컨테이너 조리실을 마련하고 상량식을 했다. 그 옆 칸에 부처님을 모시고  ‘대광사(큰 희망을 비추는 절)’란 이름으로 점안식도 마쳤다. 이 법당은 철야기도(둘째 토요일)와 목탁 배우는 공간으로 귀하게 쓰이고 있다.
쪽방촌으로 옮기고부터 잔치국수로 급식 내용을 바꿨다. 목요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무료 급식을 하는데, 300명~500명이 줄을 선다. 아침 6시부터 마당에 큰 솥을 걸고 국물 내는 일은 쪽방촌 주민 전성일 씨가 맡았다. 수혜자인 동시에 붓다맘봉사팀 일원으로 평소에도 택배 받기, 사무실 보안, 부엌 물품 관리 등 살림살이를 둘러보고 점검한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법회를 마치고 급식 준비에 들어간다. 국물은 이미 끓고 있고, 또 다른 큰 솥에 국수를 삶는 일은 배상만 이사의 몫이다. 식탁을 놓고 국수를 나눠주거나 시비가 벌어져 험악해진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은 성격 좋고 주민들과 친분이 두터운 김윤석 경감, 그와의 친분으로 봉사를 시작한 홍익지구대 최성식 형사가 주로 맡는다.
급식 때는 술 마시고 소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단골 행패꾼도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을 주민들이 대신 나서서 혼내기도 한다. 멀리 천안이나 서울역, 동대문 등에서 찾아오는 노숙자들도 있는데, 특식이 있는 날은 700~800명분이 소모된다. 먹을 게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뜻이다. 며칠 굶은 듯, 한 자리에서 국수 예닐곱 그릇씩 먹어치우는 단골 노숙자도 있다. 그들에게 쪽방촌 국수는 단순히 먹는 국수, 그 이상의 의미인 것 같다..
  
 

   
 

목요일은 신성 불가침의 날

국수 급식에 필요한 최소 인원은 열 명. 오십여 명의 봉사자 가운데 주인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팀원이 열여덟 명인데, 그들만 있으면 국수 몇 백 그릇쯤은 겁도 나지 않는다.
팀원들 일상은 목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집안 행사나 약속, 여행 등은 목요일을 빼고 잡는다. 오늘 전순애·홍경희 부부는 봉사시간에 맞추기 위해 여행지에서 아침 6시에 출발했다. 김재금 팀원은 어젯밤 늦게까지 제사를 모시고 나와 설거지를 도맡았고,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해 온 김윤석 경감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식탁을 차리고, 안 나온 주민들을 부르러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오늘 밤샘 근무에 들어간다는 최성식 형사는 출근 전에 링거를 맞아야겠다며 병원으로 향했다.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는 송이화 재무도 새벽일을 마치고 눈도 붙이지 못한 채로 나와 국수 고명을 만들었다. 그렇게 팀원들에게 목요일은 신성 불가침의 날이었다.
국수 급식 외에도 일 년에 다섯 번, 설날, 추석, 동지, 사월초파일, 여름 행사 등 큰 행사가 있다. 특히 김장은 가장 큰 연중행사로, 팀원들이 2박 3일간 지리산 상선암에 내려가 머물면서 절인 배추 10톤으로 김장을 담근다. 주지 보성 스님이 초창기부터 김장 배추와 동지팥죽 재료(팥 2가마니, 찹쌀 1가마니)를 꾸준히 후원해주신다. 

나눔이 숨 쉬는 일만큼 다반사가 된 붓다맘봉사팀. 흔들림 없고 따스한 마음이 좁고 어두운 쪽방촌에 희망의 빛을 비추고 있었다.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오늘 본 것 같다.



잠깐 인터뷰_ 붓다맘봉사팀 정일화 박부득 팀장

   
 

힘들어도 “봉사가 재밌다”

4년 전에도 오늘도 박부득 팀장은 쪽방촌 사람들 곁에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어릴 때 어머니와 할머니가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자란 탓일까? 쪽방촌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의 태도에서 ‘자타 불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건네는 말 한 마디에도 ‘그들’과 ‘나’의 경계가 없다. 핀잔에도 격의가 없고 칭찬에도 가식이 없다. 마땅치 않은 사람에게는 심한 꾸지람도 서슴지 않는다.

“할머니가 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먹을 밥과 입을 옷, 잠 잘 집은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거지가 오면 먹고 있던 밥도 덜어 주면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 주는 것이 최고의 선행이라고 하셨어요.”
자신이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게으르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돕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장 배고픈 사람한테 밥은 먹여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쪽방촌 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불자들이나 불교계가 봉사할 곳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힘겹게 붓다맘봉사팀을 지켜왔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는 혹독했다.

지난 2월, 박 팀장 아파트로 압류 통지서가 나왔다. 쪽방촌 법당과 조리실이 공기업 땅을 무단 점유했다는 이유로 강제이행금과 벌금이 부과된 것이다. 쪽방촌의 한 교회가 구청에 열아홉 번이나 민원을 넣은 것이다. 금액도 큰 데다 분할 납부도 거부당해서 강단 있는 그도 조금은 불안한 표정이다.
하지만 쪽방촌 일을 하면서 가피를 느낀 적이 여러 번이란다. 대광사 불상을 모실 때도 1천만 원이 필요한데, 딱 1천만 원을 후원하면서 반드시 쪽방촌 봉사에 써달라는 독지가가 나타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봉사는 재미있어요. 다른 부수적인 일들이 힘들 뿐이죠.”

그의 바람은 자신과 팀원들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사회복지에 관심 있는 불자가 나서서 이 불씨를 이어주는 것이다. 우리도 바란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붓다맘봉사팀이 지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주기를…….
 

글 |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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