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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는 왜 옆구리로 태어났을까
2020년 01월 02일 (목) [조회수 : 377]
   
 

인천공항에서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델리까지 꼬박 아홉 시간이 걸렸다. 인도 땅이 가까워지자 승객들이 “우~와!”하며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행기 창밖에 펼쳐진 하얀 구름바다 위로 히말라야 고봉(高峰)이 섬처럼 솟아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비행기 날개와 거의 수평으로, 저 멀리 안나푸르나의 정상이 장엄하게 서 있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저토록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 그 남녘의 작은 부족 국가에서 2600년 전에 석가모니 붓다께서 태어났구나. 그리고 거기서 성장하셨구나.’ 나는 옛말이 떠올랐다. ‘큰 산 밑에 큰 인물 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델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공항 청사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8년 전에 왔을 때와 딴판이었다. 예전에는 인도에서 대도시 기차역의 공중 화장실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인도는 그만큼 지저분하고 낙후된 나라였다. 지금은 달랐다. 공항 청사는 깔끔하고, 곳곳에서 고속도로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고, 신도시가 마구 생겨나고 있었다. 인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이 실감났다.

버스를 타고 붓다의 출생지인 인도 북부의 룸비니로 갔다. 붓다가 태어난 나라는 카필라 왕국이었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북인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곳이 네팔의 영토다. 그래서 인도와 네팔은 종종 싸운다. “붓다는 인도 사람”이라는 인도 측 주장과 “아니다. 네팔 사람”이라는 네팔 측 주장이 맞선다. 그런데 그건 요즘 와서 세운 기준일 뿐이다.
붓다 당시에는 코살라국·마가다국·밤사국·말라국 등 인도에는 16개의 고대 왕국이 있었다. 그중에서 카필라 왕국은 아주 작고 약한 나라였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정복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니 카필라 왕국은 역사 속의 카필라 왕국일 뿐, 인도땅도 네팔땅도 아니다.

버스는 룸비니를 향해 달렸다. 인도에서 불교 성지와 불교 유적은 주로 북인도의 유피 주와 비하르 주에 분포돼 있다. 유피 주와 비하르 주는 인도에서도 무척 가난한 지역이다. 창 밖의 풍경은 가난했다. 1950년대나 60년대, 아니면 70년대 한국의 거리 풍경이 저랬을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가의 살림은 궁핍했다. 초가집에다 사람이 자는 방과 소가 자는 외양간이 거의 붙어 있었다.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옥의 구조와 생활 방식 등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순례기간 내내 마주쳐야 하는 가난의 풍경이었다.

2600년 전 샤카(석가)족은 인도 북부에 살았다. 히말라야의 설산이 빤히 보이는 땅이었다. 당시 왕의 이름은 숫도다나, 성(姓)은 고타마(Gautama)였다. 왕비의 이름은 마야데비(Mayadevi)였다. 흔히 ‘마야 부인’으로 부르는 석가모니 붓다의 어머니 이름은 훗날 ‘지상 불국토 건설’을 꿈꾸던 신라에서 왕비의 이름이 됐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왕비가 다름 아닌 ‘마야부인’이었다. 그녀는 또한 선덕여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팔리어 경전에는 붓다의 어머니 마야 왕비에 대한 짧은 서술이 남겨져 있다. ‘대지처럼 의젓하고, 연꽃처럼 아름답다’. 짐작하건데 넉넉한 품성에 미모를 갖춘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루는 마야 부인이 태몽을 꾸었다. 흰 코끼리가 왕비의 몸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당시 인도는 고대 힌두교 사회였다. 힌두교에는 3억에 달하는 신이 있다고 한다. 그 신들은 종종 동물의 모습으로 화현한다. 힌두교에서 번개를 움직이는 신이 인드라다. 인드라 신은 ‘아이라바타(Airavata)’라는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흰 코끼리를 고귀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긴다. 불교 국가인 태국은 아예 국가의 수호신을 흰 코끼리로 삼을 정도다. 그러니 마야 왕비의 태몽은 길몽 중의 길몽이었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봉황이 날아와 품에 안기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룸비니 동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나무와 꽃과 풀들이 단아했다. 동산 가운데 마야데비 사원이 있었다. 사원 입구로 갔다. 몸을 풀려고 친정으로 가던 마야 왕비가 갑작스런 진통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는 장소다. 당시에는 그저 들판이었다. 마야데비 사원의 지붕에는 황금빛의 작은 탑이 하나 있었다. 그 탑에 두 눈이 그려져 있는데, 그 사이에 점이 하나 있었다. 네팔 사람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왼쪽 눈도, 오른쪽 눈도 아닌 제3의 눈이다. 우리는 그걸 ‘마음의 눈’이라 부른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깨달음이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땅바닥에서 유적을 발굴 중이었다. 세계 각국의 순례객들이 소원을 빌며 던진 동전과 지폐도 잔뜩 떨어져 있었다. 순례객들이 길게 줄을 선 곳이 붓다의 탄생 장소였다. 그곳에 마야 부인이 아기를 낳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아기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오고 있다. 룸비니 동산에서 만나는 커다란 수수께끼. 다름 아닌 ‘아기 왕자의 옆구리 출생’이다. “혹시 당시에 제왕절개를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옆구리 출생’에는 더 깊은 불교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1927~2012은 생전에 “부처님의 옆구리 출생은 ‘중도中道’를 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은 어디로 태어날까. 그렇다. 엄마의 자궁을 통해 아래로 태어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출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질과 업장이 자식에게, 다시 그 자식에게 물려진다. 과학에서는 그걸 ‘유전자’라 부르고, 불교에서는 ‘인과와 윤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싯다르타 왕자의 출생은 달랐다. 위에서 아래로 계단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1을 딛고 2가 나오고, 2를 딛고 3이 나오는 식이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옆구리를 뚫고 태어났다. 숫자로 따지면 ‘0’을 뚫고 나온 셈이다.

‘옆구리 출생’은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그렇게 끝없이 내려가는 윤회의 궤도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구리 출생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트린다. 선불교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부모로부터 몸 받아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옆구리 출생’은 이 물음에 답한다. 3 이전의 2, 2 이전의 1이 아니다. 아들 이전의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몸 받아 태어나기 이전의 자리, 다름 아닌 ‘0(空)’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0과 1, 0과 2, 0과3이 옆구리를 통해 하나로 통한다. 그래서 중도다.

마야데비 사원 안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붓다의 탄생 설화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머니 뱃속(空)과 어머니 배 바깥의 세상(色), 그 둘의 속성을 하나로 평등하게 잇는 게 ‘옆구리 출생’이다. 그래서 270자 반야심경의 핵심 가르침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깊은 뜻이 붓다의 옆구리 출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원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눈부셨다. 나무와 꽃과 잔디와 돌들, 그 위를 날면서 지저귀는 새떼. 그 아래를 오가는 순례객들. 룸비니에 흐르는 붓다의 탄생 설화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로 태어났나.
너의 고향은 어디인가.
너는 누구인가.”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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