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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8)
2019년 12월 02일 (월) [조회수 : 64]
   
 

그리운 어머니.
어젯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름달이 떴더군요. 오래 전,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오를 때 달빛에 의지해서 산길을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달빛이 얼마나 환하고 고마운 빛인지 깨달았지요.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태양의 빛을 받아 다시 지상을 밝혀줍니다. 그런 면에서 달은 거울과 흡사하지요. 불경에서 진리와 부처님은 태양에 비유하지만, 마음은 거울에 비유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마음을 맑고 밝은 거울[淨明鏡]이라 부르고, 유식학(唯識學)에서는 티끌이 없는 마음의 경지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말합니다. 대원경지란 마음이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이 모든 사물을 원만히 비추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는 달을 보면서 제 마음이 부처님의 말씀과 진리를 온전히 비추어낼 수 있는 맑은 거울인지 되돌아보았습니다. 부끄러웠지요. 참으로 세상의 두두물물(頭頭物物) 가운데 스승 아닌 것이 없음을 달을 보며 깨닫는 밤이었습니다. 


한국인과 지장보살

어머니, 오늘은 관음보살과 함께 한국 보살신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지장보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지장보살은 한국불교신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살이지요. 불자들은 지장기도를 통해 여러 가지 소원을 성취하고,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님도 지장보살을 통해 천도합니다. 저는 지장보살하면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이나 『지장십륜경』 같은 경전이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그 책은 90년대에 1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여보게’로 시작되는 제목의 수필집입니다. 책의 저자는 승복을 입은 멀끔한 외모와 능숙한 언변으로 수시로 티브이에 출연하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매번 지장신앙의 영험과 가피를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지장신앙 열풍이 거세게 불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굳이 나열치 않겠습니다. 어머니도 그 말로末路는 잘 아실 테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지장신앙을 들고 나왔고, 한국인들은 왜 거기에 열광했냐는 점일 겁니다.
사실 지장신앙은 지모신을 모시던 농경사회의 정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국의 무속서사 가운데 바리공주(바리데기)는 지장보살의 전생담과 망자천도의 이야기를 흡수해 만들어진 것이고, 또 역사적으로는 신라의 왕자 신분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지장보살로 모셔진 김지장(김교각) 스님이란 분도 있지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퍼진 지장신앙의 양태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현세구복과 죽은 이를 위한 효도의 의미가 도드라진 기복적이고 민중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지장보살 신앙은 인도가 아닌 중국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꽃을 피웠고, 그것이 다시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면서 각 나라의 기층문화와 결합해 토속신앙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해왔지요. 우리가 ‘여보게’에 열광했던 이유는 이처럼 지장보살에 대한 문화적 DNA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장보살의 기원과 서원

지장보살의 기원은 대체로 인도 전래의 지모신(地母神)인 프리티비가 불교에 수용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모습으로 변한 것으로 봅니다. 지장(地藏)이란 말이 땅이 지닌 생산력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장의 범어는 ‘크시티 가르바’인데 ‘크시티’는 머문다는 의미로 주처(住處) 혹은 대지(大地)를 뜻합니다. ‘가르바’는 어머니의 태(胎)나 자궁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지장은 땅의 생명력과 무한한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원효스님은 『금강삼매경론』에서 지장보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풉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은 대자비심으로 일체중생의 선근(善根)을 생장케 하니, 마치 대지가 초목을 생장시키는 것과 같다. 다라니로 공덕을 지니고 일체중생을 위해 혜택을 베풀어주는 것이 다함이 없으니, 마치 보배창고에 항상 보배가 그득한 것과 같다. 이러한 두 가지 뜻으로 인해 지장(地藏)이라고 한다.”
중생의 선근을 생장시키는 땅[地]과 중생을 이익케 하는 다라니와 같은 보물을 함장하고 있는 창고[藏]의 뜻을 합쳐서 지장(地藏)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풀이는 지장경전의 근본이 되는 『지장십륜경』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지장보살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 있는데 바로 ‘일천제(一闡提) 보살’입니다. ‘일천제’는 범어 ‘이찬티카’를 음사한 말로, 선근이 모두 끊어져 부처님도 제도할 수 없고, 수행을 하더라도 결코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일컫는 말이지요. ‘일천제 보살’은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포기한 보살을 말합니다. 보살의 기본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인데 왜 보살이 깨달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먹었을까요? 일천제 보살은 세상의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할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생의 탐욕과 무명은 끝이 없고, 그로 인한 중생의 고통이 끝이 없으니 보살의 성불은 영원히 미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일천제 보살’이란 중생을 향한 보살의 극대화된 자비심과 희생정신을 상징하는 말이지요. 이러한 일천제 보살의 대표가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고통의 세계에서 중생과 끝까지 함께 머물겠다는 서원을 세운 자비심 넘치는 지장보살을 그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요. 지장삼부경 가운데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신행하는 『지장경』, 즉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지장보살의 탄생배경과 서원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장보살은 먼 옛날 상법시대에 각화정자재왕여래가 계실 때, 한 바라문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삼보를 존중하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다 죽어서 무간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딸은 여래의 탑과 불상 앞에서 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해 발원을 합니다. “부처님께 바라옵건대, 미래겁이 다할 때까지, 죄업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그들을 해탈케 하겠나이다.”
이러한 발원으로 무간지옥에 있던 어머니와 죄인들은 모두 천상에 태어나는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청정연화목여래가 계신 상법시대에 지장보살은 광목光目이란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어머니가 또 살생과 불법을 비방한 죄를 지어 무간지옥에 떨어지자 광목은 여래의 존상 앞에서 서원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삼악도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 천한 여인의 몸을 영겁토록 받지 않게 된다면, 저는 백천 만억의 시간 속에서 모든 세계의 지옥과 삼악도의 죄업중생들을 구제하여, 지옥, 축생, 아귀라는 악취에서 벗어나게 하고 모두 성불시킨 다음 정각을 이루겠나이다.”
지장보살이 전생에 여자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과거의 사자분신구족만행여래의 시대에는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미래겁이 다하도록 중생을 고통에서 모두 구제한 뒤 불도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부분이 『지장경』에 나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여러 몸을 거치며 거듭된 서원과 선근으로 지장보살이란 존재가 탄생된 것이지요.
어머니, 그런데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한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네, 목건련 존자가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한 이야기가 생각이 나실 겁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목건련 존자가 이후 지장보살이 되었다는 민담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또 지장보살의 서원은 어떠한가요? 극락교주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비구로서 수행할 때 48대원을 세우는데 그때 ‘중생을 모두 건지지 못하면 부처를 이루지 않겠다’는 서원과 그 맹세가 똑같지요. 이 뿐만 아니라 명부전에 들어가 보면 지장보살의 모습은 보통 긴 머리를 지닌 여느 보살과는 다르게 머리를 깎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이 유독 스님의 모습인 것은 목건련 존자와 법장비구가 모두 스님이었던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지장경』에 나타난 지장보살의 전생담은 여러 생애 동안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한 딸의 지극한 효성이 부각되어 있지요. 지장보살을 통해 부모님을 극락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지장신앙은 여기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부모와 관련된 자식의 효성은 무속에서도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한恨이나 망자천도라는 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위에서 말한 바리데기 서사나 한국의 독창적 불교설화인 『안락국태자전』을 변용한 무속의 ‘할락궁이’ 서사도 그러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찬술된 불경은 한국의 무속이 직접적으로 결합하기엔 그 결이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들어진 불경은 한국과 공통된 정서가 있어서 그 가능성이 사뭇 높아집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부모은중경』은 그 어느 경전보다 한국인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지요.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지장경』 또한 본격적으로 효를 선양하고 민중적 기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목건련 존자의 일화나 법장비구의 서원 등을 결합해 중국에서 찬술한 위경(僞經)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정서에 맞는 경전이란 뜻이지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이라 해서 그 의미나 신앙, 내용이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사실관계는 알고 신행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머니, 오늘 말씀드리지 못한 김지장 스님이나 지장보살이 중생에게 주는 이익에 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늘 평안하고 따뜻하게 지내시길 아들이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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