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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선사, 몰매 맞고도 왜 “맞은 적 없다” 했을까.
2019년 12월 02일 (월) [조회수 : 81]
   
 

한 그릇

경허 스님이 산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 아이들이 산에서 땔감을 구해서 한 짐 짊어진 채 내려왔습니다. 경허 스님이 그 아이들을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겠느냐?”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처음 보는 스님이 “나를 아느냐?”고 물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님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경허 스님이 이렇게 또 물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보느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지금 스님을 보고 있잖아요.”
그러자 경허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볼 수가 있느냐?”
그 말끝에 경허 스님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들고 있는 지게 작대기로 나를 한번 때려 보아라. 만약 너희가 나를 제대로 때린다면, 엿을 사먹을 수 있도록 돈을 주겠다.”
“정말이죠, 스님? 돈을 주셔야 돼요.”
지게 작대기를 든 아이가 정말로 경허 스님을 때렸습니다. ‘탁!’ 한 대 맞은 경허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맞지 않았다. 어디 다시 때려 보아라.”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는 분명히 스님을 때렸습니다.”
“나는 맞은 적이 없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시 경허 스님을 작대기로 세게 때렸습니다.
“이번에는 맞았지요?”
“아니, 나는 맞지 않았다. 다시 때려 보아라.”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무리 작대기로 스님을 세게 때려도 경허 스님은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따졌습니다.
“스님, 엿 사먹을 돈을 안 주려고 그러시는 거죠?”
경허 스님은 바랑에서 돈을 꺼내 아이들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돈은 주마. 그런데 나는 맞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이들이 분명히 때렸는데도 경허 스님은 맞지 않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경허 스님은 충남 서산의 천장사에 주석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천장사 인법당 외벽에는 경허 스님이 몰매를 맞고 있는 ‘경허몰매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경허의 몰매’에 담긴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두 그릇

초기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글귀가 실려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게송입니다. 찬찬히 읽어보세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사자는 왜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요? 동물의 왕이니까요? 그런데 사자 옆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꽝!’하는 폭음에 사자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요?
 여기서 ‘사자’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이치를 깨달은 이를 사자에 빗댄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합니다. 그럼 깨달은 사자는 왜 소리에 놀라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 다음 구절도 알쏭달쏭합니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연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사자에게 몰매를 때리면 어떻게 될까요? 사자는 지게 막대기에 맞아서 ‘어~흥!’하며 신음소리를 낼까요? 아니면 꾹 참으며 아프지 않은 척할까요? 그도 아니면 경허 스님처럼 “너희가 아무리 때려도 나는 맞은 적이 없다”라며 의연히 있을까요?
세 그릇

경허 스님이 시골 초동에게 몰매를 맞고도 왜 “맞은 적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 수수께끼의 열쇠가 『숫타니파타』의 게송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자도 처음에는 소리에 놀랐을 겁니다. 코끼리떼가 달려오는 소리, 폭우와 함께 천둥이 ‘쿵!쿵!’ 칠 때는 사자도 ‘깜짝 깜짝’놀랐겠지요. 심장을 졸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자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세상 모든 소리의 정체를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그게 실은 ‘비어있는 소리’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온갖 소리가 터져나오지만, 그 소리가 더 이상 사자를 때리지는 못합니다. 왜냐고요? 허공이 나를 때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비어있는 소리’가 어떻게 나를 때릴 수 있겠습니까. 그때부터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되는 겁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왜 그물에 걸리지 않을까요? 자신이 비어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촘촘한 그물을 던지더라도 걸릴 수가 없는 겁니다. 진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경허 스님은 왜 몰매를 맞고도 “맞은 적이 없다”고 했을까요? 경허의 주인공이 몸뚱아리가 아님을 깨쳤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여겼던 감각과 몸과 의식의 정체가 실은 비어있음을 깨칠 때, 진짜 주인공이 드러납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불성’이라고도 하고, ‘본래면목’이라고도 부릅니다.

네 그릇

오늘 하루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세요. 비난하고, 화내고, 짜증내는 온갖 소리가 날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깜짝깜짝’ 놀랍니다. 왜냐고요? 그 모든 소리가 ‘꽉 찬 소리’라고 믿으니까요. ‘없는 소리’가 아니라 ‘있는 소리’라고 여기니까요. 결국 세상의 온갖 지게 작대기가 날아와 내 몸과 내 마음을 때리고, 나는 그때마다 멍이 들고 맙니다. 나의 일상에서 그물이 나타날 때마다 꼼짝없이 걸리고 맙니다. 삶의 진흙에 물이 들어서 푹푹 빠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소리의 정체, 그물의 정체, 진흙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의 정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게 작대기로 맞으면 몸도 마음도 퍼렇게 피멍이 드는 겁니다. 그럼 경허 스님은 왜 “맞은 적이 없다”고 했을까요? ‘비어있는 작대기’로 ‘비어있는 마음’을 때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허공으로 허공을 때리는 격이니까요.
그래서 경허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되는 겁니다. 아마도 경허 스님은 일부러 몰매를 맞으면서 스스로 그걸 재확인하고 있었겠지요. 밥을 지은 다음에 뜸을 들이는 보림의 과정에 있지 않았을까요?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이제, 마음이 보이네』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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