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8 토 16:40
> 뉴스 > 기획칼럼 > 아들이 들려드리는 불교이야기
     
보살(7)
2019년 11월 02일 (토) [조회수 : 75]
   
 

그리운 어머니.
계절이 어느새 깊은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가을밤이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란 시를 두런두런 읊곤 합니다. 시는 다음처럼 시작되지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이 시에서 제 마음을 가장 흔드는 부분은 바로 ‘어머니’란 말이 등장하는 곳입니다.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시인은 별을 보면서 정신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시와 육신의 근원인 어머니를 나란히 병치시킵니다. 시와 어머니가 우주의 운행원리인 별 속에 하나로 녹아드는 아름다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지요.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이러한 경지는 시인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어머니를 위해 도솔천에 올라가 설법을 하신 것이나, 길가에 버려진 이름 모를 어머니의 뼈를 보면서 부모의 은혜를 설하신 것은 그 사실여부를 떠나 불교란 종교의 지향점을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어머니를 마음에서 지우며 살 때 추함과 악이 생기고, 어머니를 떠올릴 때 아름다움과 선은 자연스레 싹튼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어원

어머니,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대승보살의 정의, 서원誓願, 그리고 실천수행의 방법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불자들이 실제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예경하고 기도하는 대보살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불자들에게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보살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여러 보살의 명호가 나올 겁니다. 오늘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신앙하고 친밀하게 여겨온 관세음보살에 대해 공부해보겠습니다.

관세음觀世音이란 명칭은 범어 아발로키테슈와라Avalokitesvara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는 세상을 널리 본다는 ‘아발로키타’와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는 ‘이슈와라’가 합쳐진 것입니다. 서역을 다녀온 중국의 현장스님은 이를 ‘관자재’보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세상을 반야의 지혜로 관하는 자재한 보살이란 뜻입니다. 관자재는 범어의 뜻에 잘 들어맞게 번역한 말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현장스님이 번역한 『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이 아닌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구마라집(쿠마라지바)스님은 ‘아발로키테슈와라’를 ‘관세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자’라고 번역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마라집스님이 서역출신이라 현장스님보다 중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일까요? 그렇게 보긴 어렵습니다. 관세음에서 세음世音, 즉 세상의 소리란 바로 중생이 내는 고통의 소리입니다. 고통의 소리를 본다[觀]는 것은 바로 반야의 지혜로 그 고통을 관한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중생의 고통을 지혜로써 구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관자재가 세간에서 벗어난 보살의 탁월함이 강조된 말이라면, 관세음이란 말에선 고통 받는 중생 곁에 머물며 자비심으로 구제를 펼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나의 고통과 하소연을 들어주고 보살펴주는 존재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분이겠지요?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의 의미를 가장 잘 담아낸 경전이 있지요. 역시 구마라집스님이 번역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입니다. 여기엔 구마라집스님이 왜 관세음이란 말을 택했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무진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이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수의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그들을 고통에서 건져 해탈케 하나니라.”

구마라집스님이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범어에 대응하는 중국어를 찾아 기계적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경전의 내용과 보살을 향한 중생의 염원까지 담아서 관세음이란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낸 것입니다. 관자재가 학술용어처럼 정확한 번역이라면, 관세음은 시적이며 불교적인 용어이지요. 아시다시피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손을 들어준 말은 관자재가 아닌 관세음이었지요. 불교경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범어의 본래 뜻을 살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한 것은 근본을 통찰하는 마음임을 알려주는 예시가 관세음보살이란 명칭입니다.


범종파적 보살,
관세음

어머니, 혹시 불상 뒤에 걸려있는 탱화를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법당에 들어가면 기도하시느라 바빠서 정작 불화를 찬찬히 살펴본 경험은 별로 없으실 수도 있겠지요. 일반적인 탱화는 중앙에 부처님이 그려지고, 좌우로 여러 보살들이 협시를 하며 서있는 구도입니다. 그 보살들 가운데 흰 옷을 입고 손에 정병淨甁을 든 보살이 있는데, 어머니도 짐작하시듯 관음보살입니다. 흰 옷을 걸치고 있어서 백의관음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관음보살이 꼭 흰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단에 세워진 거대한 벽 뒷면에는 보살이 단독으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거의 다 관음보살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이는 제가 사찰벽화에 관한 글을 수년간 연재하느라 전국의 사찰을 돌며 확인한 것이지요. 그만큼 관세음보살은 불교의 보살을 대표하는 중요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화 속 보살이 관음보살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보살의 머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관음보살은 머리에 쓴 보배관(화관)에 자그마한 부처님 한 분이 그려져 있거든요. 그 부처님이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극락정토의 세계를 묘사한 『대아미타경』(현재 널리 유통되는 구마라집 번역의 『아미타경』과는 다른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미타부처님은 극락정토에 여러 보살과 성문과 함께 계시는데 (중략) 그 가운데 두 보살이 가장 존귀하니, 한 분은 관세음보살이고 다른 한 분은 대세지보살이다. 두 보살은 언제나 아미타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며, 아미타부처님은 두 보살과 더불어 시방세계의 미래와 현재의 일을 논의한다. 아미타부처님은 두 보살을 다른 세상의 다른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보내는데, 신족통을 지녀 부처님처럼 빠르게 이동하고, 분신을 나투어 그 세계의 부처님을 도와서 중생교화를 펼친다. 다른 세상의 부처님 회상에 가서도 늘 아미타부처님을 떠나지 않으니 그 신통력과 위신력은 최고이며, 그 정수리 광명은 천불의 세계를 모두 비춘다. 세간의 중생이나 선남자, 선여인에게 만약 급박한 어려움이나 두려움, 혹은 관재官災가 생긴다면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해야 한다.”    

『대아미타경』의 보살에 관한 서술은 재미있게도 기, 승, 전, 관세음보살입니다. 분명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두 분이 가장 존귀하다고 하고선, 마지막은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서술된 이유가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보살이었습니다. 특히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음보살이 33가지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일곱 가지 재난에서 구하고,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과 자비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지요. 「관세음보살보문품」은 후에 『관음경』으로 불리며 별도로 신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후대에 만들어진 『대아미타경』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중심으로 기술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이렇듯 연결되어 있으니 민중들의 극락정토신앙에 있어 관세음보살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의상스님이 지은 「백화도량발원문」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의 경우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만약 「백화도량발원문」에서 근본스승으로 상정된 관세음보살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화엄경』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던 의상스님이 주석한 부석사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바탕으로 건축된 연유와 그곳에 모셔진 본존불이 화엄의 비로자나불이 아닌 아미타불인 이유를 간파하기 어렵겠지요. 이처럼 관세음보살은 여러 경전과 종파의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이 땅의 중생과 극락의 중생을 모두 포섭하는 범종파적 보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경전의 말처럼 모든 세계를 광명으로 비추고, 모든 부처님들을 연결하며, 신통력과 위신력이 최고인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어머니, 오늘은 너무나 친숙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관세음보살의 이모저모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따뜻한 계절이 되길 아들이 관세음보살님께 기원합니다. ‘나무 시아본사 관세음보살.’

글 | 강호진 (작가)
글 | 강호진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조계사뉴스
‘백만원력 결집불사 저금통과 약정금 ...
노드정보기술, 열화상 카메라 기증
화엄성중기도 입재식 봉행
문화
방송
조계사 정초7일기도회향 원행스님 ...
조계사 정초7일기도입재 지현스님 ...
조계사 일요법회 진우스님 법문(2...
기획칼럼
고달픈 민초들의 염원, 미륵의 세상을...
좋은 인연 만들기
보살(12)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144)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 Tel 02-768-8600 Fax 02-720-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수용
Copyright 2010 미디어조계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