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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모으는 사람들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11)
2019년 11월 02일 (토) [조회수 : 49]
   
 

“제가 본래 다이아몬드처럼 맑고 투명하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은데요?”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기분이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헌데, 이 기분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그에게 한발 다가섰다. 
“제가 드린 말씀을 잠시 잠깐 기분전환용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설프게 당신을 위로하자고 이런 말씀을 꺼낸 게 아닙니다. 공연한 과장이나 허풍은 더더욱 아니고요. 전 사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통해 저는 당신의 삶이 통째로 바뀌길 원합니다.”
그도 가볍게 웃어 보였다.
“말씀의 뜻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부처님 말씀에 집중해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들을 떨치다보면 산란하던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마음도 상쾌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게 고요한 시간을 충분히 가져도 될 만큼 호락호락하질 않습니다. 숙제가 늘 산더미인 걸요. 그걸 다 제쳐두고 신선놀음하듯 저만의 생각 속에 매몰되어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혹시라도 제 말씀을 오해했을까 걱정이군요. 세상과 떨어져 당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당신 혼자만의 삶을 계획하라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살아간다면 당신은 외톨이가 되거나 무능한 사람, 심하면 사회부적응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제가 당신에게 그렇게 살아보라고 권유할 리 있겠습니까?”
항변이라도 하려는 듯, 그도 눈빛에 힘을 주었다.
“부처님, 세상 속에서 살아가자면 뭔가 일을 해야만 하고, 일을 하려면 사람을 만나야만 하고, 사람과의 만남은 사건의 연속이고, 그 사건들은 좋건 싫건 제 삶에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사건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사람과의 만남을 줄여야 하고,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려면 일을 줄여야하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잠시 침묵하셨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당신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무엇과의 관계를 줄이면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과도 저절로 줄어들겠지요. 하지만 침착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말한 그 스트레스라는 것이 반드시 일의 양, 만남의 횟수, 사건의 횟수와 비례하던가요?”
그도 잠시 침묵하였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당신과 아내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아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별로요. 아내와 사이도 꽤 괜찮은 편입니다.”
“그럼, 아내와 보내는 시간도 많겠군요.”
“그렇지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아내와 어떤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요. 서로 맞장구치며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갑자기 사소한 일로 토닥거리기도 하고, 집안 경조사나 아이들 문제 등으로 제법 언성을 높인 적도 있지요.”
“그런데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까?”
“스트레스라고 할 것까지야….” “왜죠?”
“제가 아내를 잘 아니까요. 그러니 그때뿐이죠. 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 않습니까?”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처님도 따라 웃으셨다.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아내와 많은 시간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함께 하고, 또 많은 사건들을 겪습니다. 그러니, 앞서 당신이 한 말씀대로라면 아내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커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아내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내에 대해 잘 알 듯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안다면, 그 사람이나 그 사람과의 일에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부처님은 정말 골치 아픈 사람을 보지 못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설령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해도, 부처님이야 얼마든지 그런 사람들을 피하고 살 수 있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지요. 불쾌한 일을 겪고도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것, 이것만큼 짜증스러운 일도 아마 없을 겁니다.”
부처님이 웃으셨다. “당신의 아내는 여태 당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만 했습니까?”
“그렇진 않지요. 꽤나 속상했던 적도 많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내만 보면 짜증스럽고, 그 불쾌함에서 탈출할 방법은 아내와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겠군요.”
“아휴, 무슨 말씀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라고. 이미 다 지난 일인데요, 뭐.”
“‘이미 다 지난 일’,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이 현재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까닭은 아내와 있었던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습니다. 기억으로 붙잡지만 않으면 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의 대부분이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다투는 까닭을 곰곰이 살펴보면 현재의 사건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영향이 더 크지요.”
그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부처님. 이미 지난 과거라는 걸 알면서도 불쾌한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쾌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은, 당신이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 현재의 A가 아니라 ‘과거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했던 A’이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여전히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과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당신이 조금 전 저에게 ‘이미 지난 과거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지만, 사실 당신은 그 A를 만날 때마다 이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이라고 정말 인정한다면, 불쾌한 기억에 사로잡힐 리 없지요. 왜냐하면 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현재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과거를 붙잡고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꿈속에서 만난 여인을 찾아다니거나 허깨비에게 사로잡힌 것만큼 허망한 짓이지요.”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요, 부처님. 그 기억이란 것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부처님께서 깔깔거리며 웃으셨다.
“몇 번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당신이 아내를 잘 알 듯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면 된다고. 저는 당신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그 사람을 만나지 말라거나 아예 관계를 끊으라고 권유하는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불쾌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당신께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침착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로 보고, 그 사람을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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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글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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