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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 선사는 왜 법상에서 “맴! 맴!”하고 울었을까.
2019년 11월 02일 (토) [조회수 : 75]
   
 

한 그릇

허주 선사1805~1888는 전라도 순천 송광사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백講伯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말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불언무위不言無爲 설법을 했습니다. 허주 선사는 당대에 인기가 퍽 많았습니다. 가끔 서울에 가면 신도들이 몰려들어서 앞다투어 공양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한 끼 밥상이 열 개나 차려져서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그럼 허주 선사는 밥상 하나에서 밥 한 숟갈씩 발우에 덜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허주 선사가 화계사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뜰에는 수백 명의 청중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상에 오른 허주 선사는 한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법상을 내려왔습니다. 그게 설법의 전부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이고, ‘허주의 침묵’에 담긴 의미를 화두처럼 들고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한참 지난 후에 어떤 사람이 허주 선사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법상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허주 선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리는 언어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진 자리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게는 눈곱만큼도 허물이 없다.”
 
청중 앞에서 허주 선사는 침묵만 지켰습니다. 그러고도 “내게는 아무런 허물(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침묵 설법’에는 대체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걸까요. 좀 더 자세한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디, 여기서 단초를 찾아볼까요.
두 그릇

허주 선사가 던진 무언의 설법에 매료당한 걸까요. 신도들은 다시 허주 선사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당부의 말씀을 미리 드렸습니다. ‘무언無言 설법’은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알아듣기 쉬운 말로 법문을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허주 선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법문 하던 날, 화계사에는 다시 숱한 청중이 몰려들었습니다. 
 
허주 선사는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번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겁니다. 청중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법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청중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법상의 선사는 말이 없고, 경내에는 침묵만 흐르고, 청중은 이 황당한 상황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르자 청중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법문도 들리지 않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을까요. 급기야 어떤 사람이 하품을 했습니다.
 
그걸 본 허주 선사가 드디어 입을 뗐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하다, 용해!” 그런 다음에 허주 선사는 다시 ‘침묵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참다 못한 청중이 물었습니다. “스님, 도대체 무엇이 용하단 말씀입니까?” 허주 선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굼벵이가 땅속에 엎드려 있다가 앙금앙금 기어 나왔단 말일세.” 청중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허주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정신을 차려서 ‘맴맴’하고 울었지. 이것이 용한 일이 아니겠는가. 중생이 번뇌 속에 묻혀 있다가 염불하고 참선하여 부처가 되는 것도 이것과 똑같단 말이지. 용하고 용하지!”
 
이말 끝에 허주 선사는 “매앰! 매앰!” 하는 매미 울음소리를 내고서 법상을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허주 선사의 ‘매미 법문’입니다. 온통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허주 선사는 청중의 하품을 보고서 왜 “용하다”고 했을까요. “맴맴”하는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왜 설법을 마쳤을까요. 거기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담긴 걸까요.
세 그릇

공자는 말년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제자인 자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뜻밖의 말을 듣고 자공이 여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이어받아 전하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러고서 공자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병세는 점점 나빠졌고, 7일 후에 공자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왈가왈부합니다. 공자가 유언을 남겼느냐, 아니면 유언을 남기지 않았느냐. 이걸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은 허주 선사의 설법과도 통합니다. 법상에서 침묵만 지킨 허주 선사는 과연 법문을 했느냐, 아니면 법문을 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유언을 남겼을까요? 허주 선사는 설법을 한 걸까요? 공자가 유언을 남겼다고요? 그럼 그 유언은 대체 어떤 겁니까?
 
눈을 감고 가만히 궁리해 보세요. 공자의 유언은 무엇일까요. ‘공자의 침묵’일까요. 아닙니다. 다시 궁리해 보세요. 공자가 침묵할 때 누가 말을 했나요. 그렇습니다. 창밖의 새가 울었습니다. 처마 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위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와 함께 구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달이 뜨고,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공자의 유언은 ‘침묵 너머’였습니다. 공자가 침묵할 때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우주의 설법’이 공자의 유언이었습니다.
네 그릇

허주 선사의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묵 자체가 설법이 아닙니다. 침묵할 때 드러나는 사람의 소리들, 세상의 소리들, 우주의 소리들이 허주의 설법입니다. 그 모든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본래 자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마치 ‘굼벵이가 땅속에 있다가 앙금앙금 기어 나오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공空이 색色으로 화해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럼 청중의 하품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진리가 하품으로 화해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렇게 공空이 색色으로, 또 색色이 공空으로 돌고도는 풍경을 보면서 허주 선사는 “용하다, 용해”라고 감탄한 겁니다. 진리의 당체가 드러났으니 말입니다. 
 
결국 허주 선사는 한 시간에 걸친 침묵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 보여준 겁니다. 아무런 가감도 없이 말입니다. 그걸 빤히 보고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청중을 위해 다시 한 번 밑줄까지 그었습니다. 뭐라고요? “맴!맴!”하는 매미 울음소리로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눈을 감아 보세요. 가만히 귀기울여 보세요. 들리시나요? “맴!맴!”하고 울어대는 부처의 소리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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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생각의 씨앗을 심다』 『이제, 마음이 보이네』 『현문우답』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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