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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의 화두를 뚫는 근육을 키우는 법
2019년 10월 02일 (수) [조회수 : 58]
   
 

한 그릇

혹시 피터 슈라이어를 아시나요? 그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사람입니다. 독일 출신인 슈라이어는 기아차를 ‘디자인 기아’로 바꾼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기아차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궁금하더군요. 과연 어떤 안목이 그를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렸는지 말입니다.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슈라이어 곁에 있던 부하 디자이너가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자동차의 기어 손잡이를 디자인할 때라고 합니다. 부하 직원은 색상과 라인까지 디자인해 기어 손잡이 실물을 만들었습니다. 슈라이어가 와서 그걸 봤습니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기어 손잡이를 잡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잡았더니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꽈~악’ 눌렀습니다. 정말 아플 정도로 말입니다. 그가 “아야!”하고 소리를 지르자 슈라이어가 말했습니다. “자동차의 기어 손잡이는 몇 시간씩 손을 올리고 있어도 편해야 한다.” 슈라이어는 디자인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운전하는 사람과 자동차가 한몸이 되는지를 체크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슈라이어가 기어 손잡이의 디자인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그립감까지 생각하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걸 몇 시간씩 잡고 있을 때의 느낌까지 고려하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그건 본인이 직접 해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어 손잡이를 직접 잡고서, 감촉을 직접 느끼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온갖 물음을 직접 궁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슈라이어는 ‘나의 물음’과 ‘나의 느낌’ ‘나의 생각’을 몸소 따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그릇

불교 조계종의 주된 수행법은 간화선看話禪입니다. ‘산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이 누구인가. 이뭣고?’ 혹은 ‘무無’ 등의 화두를 듭니다. 요즘은 일반 신자들도 간화선 수행을 꽤 합니다. 처음에는 꿈도 크고 기대도 큽니다.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하다가 어느 순간 ‘빵’ 터져서 깨달음이 올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출가 직후 경전 공부를 외면하고 무작정 선방으로 달려가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막상 해보면 어떻습니까. 처음 생각과 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화두가 잡히질 않습니다. 화두에 대한 간절함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소연합니다. “왜 내게는 간절한 의문이 안 생기나.” “왜 나와 화두가 하나가 되지 않나. 운전자와 자동차가 하나가 되지 않나.” 이렇게 푸념합니다.
 
그렇게 간절함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아직 ‘나의 물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덧셈과 뺄셈이 궁금한 유치원생이 있습니다. 가게에서 1000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은 그는 궁금합니다. 왜 1000원을 내고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면 거스름돈 500원을 돌려받는지 말입니다. 유치원생은 그걸 정말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야 다음부터는 물건을 살 때 계산이 제대로 됐는지 혼자서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유치원생에게 ‘덧셈과 뺄셈’은 간절한 물음이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유치원생에게 방정식이나 미적분 문제를 건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걸 풀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뻔합니다. 마음의 바퀴가 계속 헛돌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가질 못하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유치원생에게 그건 ‘나의 물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궁금하고, 내가 풀고 싶어, 내게 절실한 물음이 아직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방정식 문제를 들고 있다고 해도, 내 안에서는 간절함이 올라오질 않습니다.
 
간화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간절함이 없는데, 아무리 미적분 문제를 들고 있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간절해야 화두도 간절해지는 법입니다. 내가 간절하지 않은데, 어떻게 화두가 간절해질 수 있을까요.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화두를 뚫을 근육을 내가 갖추게 될까요.
세 그릇

과학자 에디슨이 왜 헛간에서 거위알을 품었을까요? 사람들은 “천재는 어렸을 때부터 엉뚱하고 유별나다”고 말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어린 에디슨은 자신의 물음을 따라갔던 겁니다. “어미 거위가 품으니까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네. 그럼 내가 품어도 나올까?” 자신의 가슴에서 저절로 올라온 물음을 따라서 간 겁니다. 그때 ‘내가 품어도 거위알이 부화할까?’라는 물음은 에디슨에게 간절한 화두입니다.
 
전구를 발명할 때도 그랬습니다. 에디슨은 700회 넘게 연거푸 실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에디슨이 ‘내 안의 물음’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간절함’에 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힘들지 않습니다. 지치지 않습니다. 내가 궁금하니까, 내가 알고 싶으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답을 찾아갈 뿐입니다. 그게 ‘간절함’입니다. 
세상에는 ‘나의 물음’을 좇아가는 사람도 있고, ‘남의 물음’을 좇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덧셈이 궁금해서 스스로 손가락을 세면서 풀어보는 유치원생이 나중에는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되는 법입니다. 왜냐고요?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삶의 온갖 물음들을 스스로 궁리하고 답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를 쓰는 동안 ‘생각의 근육’이 자라게 됩니다. 그 근육이 커질수록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힘도 커집니다. 그게 통찰력입니다.
 
그렇게 생각의 근육이 커지고 커지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간화선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간화선의 모든 화두는 이 물음과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화선 수행은 결국 나의 주인공을 찾는 일이니까요.
네 그릇

어쩌면 우리는 남이 준 물음, 남이 준 문제에 너무 익숙한 건 아닐까요. 불교 수행자뿐만 아닙니다. 과학자도, 예술가도, 철학자도, 학생도, 회사원도, 살림하는 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나의 물음’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사는 건 아닐까요.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사소하거나, 너무 민망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남이 준 물음이나 남들이 알아주는 더 큰 물음을 잡느라고 말입니다.
 
삶의 궁극적 물음을 풀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간화선의 화두를 뚫을 근육을 갖추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내 안에서 저절로 올라오는 삶에 대한 물음을 잡아야 합니다. 그게 ‘나의 물음’입니다. 그걸 풀면서, 그걸 따라가야 합니다. 그 와중에 ‘생각의 근육’은 저절로 자랍니다. 덧셈이 궁금하면 덧셈을, 곱셈이 궁금하면 곱셈을 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미적분과 ‘이뭣고’를 미치도록 풀고 싶은 날이 찾아옵니다. 그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뭣고’라는 화두를 간절하게 품고자 억지로 애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고요? ‘이뭣고’는 이미 내 안에서 올라온 ‘나의 물음’이 돼 있을 테니까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풀고 싶은 ‘나의 화두’가 돼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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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생각의 씨앗을 심다』 『이제, 마음이 보이네』 『현문우답』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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