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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지막 식사
2019년 07월 02일 (화) [조회수 : 57]
   
 

한 그릇

불가佛家에서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중시합니다. 그때 내놓는 한 마디에 그 사람의 견처見處가 녹아 있으니까요. 가령 누군가 “아, 내 삶을 돌아보니 참 허무하네”라고 했다면 그 사람의 견처는 ‘삶의 허무’가 되겠지요. 그런데 수행의 삶을 살다간 선지식들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남다릅니다. 거기에는 삶을 관통하고, 또 죽음을 관통하는 ‘한 마디’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큰 공부거리가 됩니다. 그럼 석가모니 붓다는 어땠을까요. 육신이 무너질 무렵, 붓다가 한 말 중에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대목이 있었을까요.
 
2600년 전의 인도입니다. 붓다는 29살 때 출가해 35살 때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45년간 북인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깨달음의 이치를 전했습니다. 이제는 붓다의 나이도 80세가 됐습니다. 아무리 깨달은 사람이라 해도 육신은 시들고, 결국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붓다의 육신에도 주름이 생기고, 체력은 떨어지고, 시력은 전보다 뚜렷하지 않았겠지요.
 
어느 날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숲은 대장장이집 아들 쭌다의 소유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쭌다는 곧장 붓다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붓다의 법문을 청해서 듣고 감사한 마음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붓다를 비롯해 제자들까지 식사 대접을 한 겁니다.
 
당시 쭌다가 공양한 메뉴는 돼지고기라고 합니다. 버섯요리라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붓다는 쭌다가 대접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문제는 음식을 먹고 난 뒤였습니다. 인도는 더운 나라라 음식이 쉽사리 상하기 때문이었을까요.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 난 붓다는 그만 배탈이 났습니다. 단순한 배탈이 아니었습니다. 팔리어 경전에는 ‘출혈이 심한 설사병’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식중독에 걸린 겁니다. 붓다는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피를 쏟았을 겁니다.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붓다는 결국 육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습니다.
 
두 그릇

저는 추측해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쭌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쭌다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네가 대접한 음식 때문에 부처님이 위독하시다” “너의 공양이 아니었다면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일도 없지 않은가” “너만 아니었어도 부처님 법문을 계속 들을 수 있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온갖 원망과 추궁이 쏟아지지 않았을까요.
 
그럼 쭌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내가 올린 음식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결국 나 때문에 부처님이 죽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죄책감을 느꼈겠지요.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세 그릇

팔리어 경전에서 저는 ‘붓다의 대응’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붓다는 몹시 고통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쏟아내고, 출혈까지 심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생사의 기로에 선 붓다는 ‘쭌다의 죄책감’을 걱정합니다. 이대로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이 모두 쭌다를 미워하고, 쭌다조차 자기 자신을 원망할 테니까요. 그래서 붓다는 시자인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로 쭌다를 슬프게 할지 모른다. ‘당신의 공양으로 여래가 열반에 드셨소. 당신의 실수이며 불행이오.’ 그러니 쭌다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쭌다여, 여래가 당신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신 후 열반에 드신 것은 당신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 쭌다여, 나는 이 말씀을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참 놀랍지 않으세요? 붓다는 쭌다의 마음에 생겨날 매듭을 정확히 내다보고, 그 매듭을 미리 풀어버렸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쭌다의 공양’을 실수와 불행에서 공덕과 행운으로 뒤집어 버렸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쭌다에게 “부처님께 올린 마지막 공양은 당신의 공덕이자 행운이오”라고 말했다면 억지스러운 위로에 그치지 않았을까요. 쭌다 역시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붓다가 직접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전하라 했으니 쭌다의 매듭은 풀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네 그릇

붓다의 처방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거대한 가르침이 녹아 있습니다. 쭌다에게 생겨난 죄책감은 ‘색色’입니다. 붓다는 그걸 ‘공空’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왜 그게 가능했을까요. 붓다는 세상의 모든 색色이 본래 공空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녹일 수 없는 상처도 없고, 지울 수 없는 죄책감도 없고, 평생 안고 갈 고통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묵은 고통’ 하나쯤 평생 가슴에 박고서 살아갑니다. 큼직한 돌덩이 하나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오해와 착각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한 착각이냐고요? 이치에 대한 착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감정은 ‘눈雪’입니다. 놔두면 저절로 녹습니다. 대신 자꾸만 떠올리고, 자꾸만 원망하고, 자꾸만 후회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두면 녹아버릴 눈을 내가 자꾸 뭉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눈이 점점 커지고, 눈이 점점 단단해 집니다. 나중에는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고, 더 나중에는 바위처럼 커지게 됩니다. 그게 뭐냐고요? 우리가 안고 사는 죄책감입니다. 내 가슴에 박고 사는 상처와 고통입니다. 우리는 그걸 돌멩이라고 생각하지, 눈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게 이치에 대한 오해이자 착각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한쪽은 ‘죄책감을 가진 쭌다의 길’입니다. 그 길로 가면 평생 고통의 돌멩이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의 길은 ‘죄책감을 녹여버린 쭌다의 길’입니다. 그 길로 가면 평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길을 택하려면 눈(감정)을 계속 뭉치면 됩니다. 두 번째 길을 택하려면 눈(감정)이 녹게끔 그냥 내버려 두시면 됩니다. 간혹 생각이 나더라도 그냥 놔두면 됩니다. 자꾸 기억을 되씹으며 눈덩이를 뭉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저절로 녹게 마련입니다. 세상의 모든 색色은 본래 공空하니까요.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생각의 씨앗을 심다』『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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