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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의 정체를 밝히다.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7)
2019년 07월 02일 (화) [조회수 : 59]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짓눌려 며칠을 보내다가 어느 날 저녁 퇴근하던 길에 부처님을 찾아뵈었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신 부처님께서 걱정스럽다는 듯 물으셨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얼굴이 어둡군요.”
그가 망설이다가 입을 떼었다.
“곰곰이 관찰하고 생각해 보았더니, 부처님 말씀이 사실이더군요. 하늘의 구름처럼 몸도 마음도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덧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그렇게 관찰하고 그렇게 사유한 결과물은 부처님의 말씀과 다르더군요.”
“어떻게 다르던가요?”
“부처님께서는 생각과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깊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에게 찾아온 것은 깊은 허무함뿐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가벼운 바람에 쉽게도 흩날리는 꽃잎처럼 덧없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셨다. 그렇게 한참을 묵묵히 바라만보자 그가 당황했다.
“제가 혹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인한 건가요?”
부처님께서 마침내 조용히 말씀하였다.
“아닙니다. 당신은 제가 말씀드린 대로 바르게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허무함이 찾아드는 거지요?”
“그 허무함의 원인은 바른 관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오랜 습관 때문입니다.”
“저의 오랜 습관이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 ‘모든 게 덧없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씀하셨지요?”
“네.”
“당신의 말씀을 뒤집어보면 그 동안 당신은 무언가 영원한 것, 영원하진 않더라도 무언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가치를 부여한 무언가를 획득하고 유지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삶의 이유라 자부하면서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그렇게 살지 않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요. 어떤 이는 사랑에, 어떤 이는 부에, 어떤 이는 명예에 가치를 부여하고는 그것을 쟁취해 오래토록 소유하는 것을 삶의 이유요 목적이요 의미로 여기며 살아가지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랑도 부도 명예도 본래 영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허무하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잠시 침묵하셨다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침착하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허무함은 사랑이나 부나 명예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든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그런 것들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당신의 기대가 좌절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거나 그거나 같은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조금 전에 당신의 허무함을 꽃에 빗대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덧없다’는 표현을 쓰셨지요?”
“네.”
“꽃은 그 모습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줄기 바람에 꽃대가 쉬이 꺾이고, 한 바탕 소나기에 꽃잎이 너부러지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요?”
“한편 생각해 보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는데 왜 뜻밖의 일처럼 호들갑을 떨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무하다 느낄까요?”
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가 궁금한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씀하셨다.
“당신은 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꽃이 오래가면 좋겠다.’는 기대는 정당합니까, 부당합니까?”
“희망 사항일 뿐, 사실 부당한 요구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꽃이 오래 갈 수 없다는 걸 잘 안다’고 말했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저 아름다운 꽃이 오래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래 머물라고 꽃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꽃이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고, 당신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습니까?”
그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 없지요.”
부처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꽃은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꽃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좌절될 수밖에 없는 부당한 요구의 결과에 ‘허무하다’ 느끼고, 그 허무함의 원인을 꽃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그 허무함은 덧없이 피었다 지는 꽃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고 요구했던 당신의 어리석음 탓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부처님, 어디 꽃 한 송이뿐이겠습니까? 내 아내와 자식들, 친구와 이웃들에게 이랬으면 좋겠다,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고 또 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디 남뿐이겠습니까? 저 자신에게도 이래야 마땅하지 않겠냐고 다그치면서 살아왔지요.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에 참 많이도 노여워하고, 원망하고, 허무해하고, 우울해했지요.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것이 그들 탓이 아니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 저의 어리석음 탓이었군요.”
부처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오래된 습관입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글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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