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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虛無)의 숲에서 길을 잃다.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6)
2019년 06월 01일 (토) [조회수 : 25]

부처님의 말씀은 표정만큼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바람이 훈훈했다. 오월이 무르익었는지 아카시아향기가 코를 찌르고, 유월이 가까운지 옅은 밤꽃향기가 바람에 간간이 섞여 있었다. 그 향기가 하도 좋아 내려앉는 석양을 밟으며 동네어귀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뚫고 솟아난 이름 모를 풀들이 기슭에 빼곡했다.
“저건 이름이 뭐야?”
평소 야생화에 관심이 많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보랏빛 꽃을 피운 저것? 각시 붓꽃. 어때, 새색시마냥 수줍음 타는 것 같지 않아?”
“꽃자루가 길쭉하고 푸르스름한 저 꽃은?”
“현호색. 예전에 진통재로 사용하던 약초야.”
“샛노란 빛깔에 앙증맞은 저 꽃은 뭐야? 참 예쁘네.”
“예쁘지. 한 송이 꺾어봐.”
책상 위 컵에라도 꽂아볼까 싶어 꽃대를 하나 꺾었다. 그러자 노란 진물이 손에 묻었다.
“냄새 한번 맡아봐.”
별생각 없이 손을 코로 가져가던 그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냄새가 왜 이래?”
쌤통이라는 듯이 아내가 손가락질까지 하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어때, 똥냄새나지? 하지만 어른 똥만큼 구리진 않지? 게다가 꽃 모양새도 빛깔도 당신 말대로 예쁘고 귀엽잖아. 그래서 애기똥풀이야.”
“듣고 보니 정말 애기들 설사한 것 같네.”
둘이서 또 한바탕 웃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낯선 풍광 속을 거니는 것도 상쾌했지만 간만에 신이난 아내의 표정을 보는 건 더욱 유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쾌함과 유쾌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풀도 나무도 내려앉는 어둠에 슬금슬금 묻혀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던 짙은 꽃향기도 더 이상 매혹적이지 않았다.
문득 낮에 들었던 부처님 말씀이 떠올랐다.
“당신의 몸은 한 줌 흙으로, 한 방울 물로, 한 순간 온기로, 한 점 바람으로 돌아갑니다.”
지당한 말씀이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지 않던가? 저 빛깔과 향기인들 얼마나 갈까? 따가운 햇살에 곧 퍼석하게 시들어가고, 비라도 한바탕 훑고 가면 후드득 떨어져 진흙탕에 나뒹굴게 뻔했다.
어디 풀과 나무, 꽃과 향기만 그런가? 사람도 마찬가지지. 꿈 많던 시절엔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이것도 저것도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디 그런가? 정신없이 닥치는 뜻밖의 일에 우왕좌왕하다가 볼품없이 시들어가기란 사람도 매 한가지였다.
“당신의 마음은 강가 돌멩이에 낀 누런 때와 같습니다. 그건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언어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지당한 말씀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서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고,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고, 이런 저런 사상을 배우고, 이런 저런 일을 성취했노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이젠 오래된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처럼 혼자서나 꺼내볼 아련한 추억일 뿐이었다.
점점 떨어지는 기력만큼이나 보고 듣는 느끼고 생각하는 힘도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는 그 추억의 창고마저 텅 비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잊어버리고, 타인의 기억에서도 잊혀져가다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삶이었다.  
쉽게 시드는 꽃처럼, 쉽게 무디어지는 향기처럼, 오늘 하루도 이리 쉽게 저물고 있었다. 남은 나날인들 오늘과 다를까?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삶도, 뭔가 해야 할 것처럼 다그치는 현재의 삶도, 보다 낫기를 기대하는 내일의 삶도, 마냥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가에서 이 말이 주문처럼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날선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여보!”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한참이나 뒤쪽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고 보니, 주위는 이미 칠흙처럼 어둡고, 마을의 불빛도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그도 어리둥절했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말도 없이 성큼성큼 땅만 보고 앞서 걸은 게 벌써 한 시간이야!”
종종 걸음으로 달려온 아내가 따지듯 물었다.
“당신 왜 그래? 처음엔 깔깔거리며 잘도 웃더니, 왜 갑자기 넋 나간 사람처럼.”
“미안해! 뭘 좀 생각하느라 그랬어. 이제 돌아갑시다.”
토라지듯 등을 보인 아내는 곧장 아랫길로 내쳐 걸음을 재촉했다. 그도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나선 둘만의 나들이를 자신이 망쳐버린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한참이나 앞서 달아나는 아내의 그림자를 보면서도 터덜거리는 그의 발걸음은 영 가벼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숲속의 짙은 어둠처럼 무겁게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왜 이러지?”
이상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말씀에 따라 관찰하면 망각하고 있던 진실을 명확하게 확인하게 되고 생각과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더욱 깊어진다고 하셨는데, 지혜와 평온함은커녕 더욱 혼란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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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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