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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선시(禪詩) 이야기
2019년 06월 01일 (토) [조회수 : 14]

중국 당나라 때의 일이다. 장졸(張拙)이라는 수재가 석상 큰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스님이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예, 장졸입니다.” 대답하자마자 스님이 다시 묻는다. “여기에서는 교묘함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가 없는데 졸렬함이 어디로부터 왔는고?”

역시 수재인지라 퍼뜩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게송을 지어 바쳤다.

光明寂照遍河沙  광명적조변하사
凡聖含靈共我家  범성함령공아가
一念不生全體現  일념불생전체현
六根纔動被雲遮  육근재동피운차
斷除煩惱重增病 단제번뇌중증병
趣向眞如亦是邪 취향진여역시사
隨順世緣無罣碍 수순세연무가애
生死涅槃等空花 생사열반등공화

광명이 고요하게 비추어
항하사 세계에 두루하니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중생들이
모두 다 나의 집안이로세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나타나지만
육근을 움직이자마자
무명의 구름에 가리움을 당한다네
번뇌를 끊어 없애려하는 것은
거듭해서 병을 키우는 것이요
보리의 세계로 취향해가려는 것도
또한 삿된 것이라네
세간의 인연을 따라주어
걸림이 없으면
생사다 열반이다 하는 것이
똑같이 허공의 헛꽃이라네

교묘함과 졸렬함의 분별이 사라진 광명의 자리를 장졸 수재는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자리가 저절로 드러나지만 육근의 작용을 일으켰다하면 그만 구름 속이다. 끊어야 할 번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나아가야 할 보리의 세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범부와 성인이 한집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해스님이 동경에 있는 여관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 지은 시가 있다.

佳木淸於水 가목청어수
蟬聲似楚歌 선성사초가
莫論此外事 막론차외사
偏入客愁多 편입객수다

아름다운 나무가 물보다 맑고
사방의 매미소리는 초나라의 노랫소리 같구나
이 밖의 다른 일은
논하지 말지니 나그네 시름만 치우쳐 들어올 뿐이다.

사면초가라더니 사방에서 매미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바쇼가 지은 하이쿠 첫 구가 독립된 5·7·5의 17자로 된 짧은 시 한 수가 떠오른다. 편의상 우리말로 옮겨서 간단하게 소개한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매미가 우는 숲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일시에 그친다. 고요함이다. 다음 순간 숲에 울려 퍼지던 울음소리가 바위에 스며 들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위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스며 들어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미의 울음은 바위에 스며들고 바위를 지나서 흙 속으로까지 스며 들어가는 것이다.

만해스님이 조동종 대학교의 별원에서 지은 시를 소개해본다.

院裡多佳木 원리다가목
晝陰滴翠濤 주음적취도
幽人初破睡 유인초파수
花落磬聲高 화락경성고

별원 속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많아
낮에도 음산하고 푸른 나무 물결이 떨어진다.
그윽한 사람이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꽃은 떨어져 내리고 경쇠 소리 높아만 가는구나.

별원 속에 숲이 우거져서 잎사귀들이 물결치듯 흔들리는 모양을 형용하고 있다. 낮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기 마련이다.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람 따라 나무 잎사귀들이 파도처럼 휩쓸려 갔다가 휩쓸려 내려왔다가 잠잠해졌다가 살랑살랑 거리다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그윽한 사람이 막 졸음에서 깨어난다. 꽃이 말없이 떨어져 내리고 경쇠 소리가 그윽하게 높아만 가고 있다.

글 | ‌박상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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