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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선시(禪詩) 이야기
2019년 05월 01일 (수) [조회수 : 18]

영호스님(鼎鎬映湖, 1870~1948 石顚)이 약사암(藥師庵)에서 지은 시 한 수를 읽어본다. 푸른 파초에 온 몸이 시원해져오는 시이다.

綠蕉風動佛軀凉 녹초풍동불구량
上有飛泉灑兩長 상유비천쇄양장
題名聊看雲起處 제명요간운기처
林花如霰客衣春 임화여산객의춘

녹색 파초에 바람 흔들려 부처 몸이 시원한데
그 위에 나는 샘물 두 줄기 길다란 비 뿌려주네
이름을 적어놓고 머얼리 구름이는 곳을 보고있노라니
숲의 꽃이 싸락눈처럼 흩날리는데 나그네 옷이 향기로워라

숲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꽃잎이 바람결에 싸락눈처럼 흩날린다. 한 번 휙 지나가고 한참 있다가 또 지나간다. 꽃잎을 눈처럼 맞고 있노라면 어느새 옷자락에 향기가 스며든다. 옷자락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하다. 멀리 구름 이는 곳을 바라본다. 구름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구름은 싸락눈처럼 흩어져 간다. 녹색 파초위로 빛줄기 같은 물줄기가 흘러간다.

영호스님이 대흥사에 들렀는데 문 밖의 작은 연못에 연꽃이 한창 피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윽고 한 수 지었다.

臨門遂怪暗香來 임문수괴암향래
早是紅蕖恰欲開 조시홍거흡욕개
難道淸眞通妙法 난도청진통묘법
卽看丰采絶塵埃 즉간봉채절진애

문에 다다르자 암향이 다가옴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붉은 연꽃이 막 피어나려 함이었네
청정하고 진실하게 통한 묘법
말하기가 어려워서
티끌 떠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뿐이라네

붉은 연꽃이 막 피어나려 하는 찰나를 절묘하게 노래한 시이다. 막 연꽃잎을 내밀려 하고 있는 찰나를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진흙 구덩이에서 꽃을 피워내는 순간 더이상 진흙 구덩이가 아닌 것이다. 향기 그윽한 묘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 묘법은 말로 하기가 어려워 그저 아름다운 연꽃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아까 문에 다다르기 전부터 피어올랐던 연꽃 향기를 은은하게 맡을 뿐이다.

문득 지옥에서도 빠져나오게 해주는 화엄경 제일게가 떠오른다. 화엄경 제일게는 진흙 구덩이 같은 지옥에서 피어올라 지옥을 빠져나오게 해주는 오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번 기회에 소개한다.

若人欲了知 약인욕료지
三世一切佛 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 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할지어다.
일체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이로다.

중국에 왕명간(王明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착한 일이라고는 한 것이 없이 병들어 죽었다.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지옥문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지옥문 앞에서 한 스님을 보았는데 지장보살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왕씨에게 게송 하나를 외우게 하였는데 바로 일체유심조 게송이었다. 이 게송을 외우면 지옥의 고통까지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왕씨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게송을 외우고 들어가 염라왕을 만났다. 염라왕이 그대는 무슨 공덕을 지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왕씨가 답하기를 오직 하나의 사구게만 수지하였다고 하고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염라왕이 이에 더 살다 오라고 내보내 주었다.

왕씨가 이 게송을 외울 때 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지옥문에서 피어오른 연꽃 소식이다. 이 게송 전체가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올라 지옥의 고통을 없애준 것이다.

이수익은 연꽃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읊기도 하였다.

연꽃

아수라의 늪에서
오만 번뇌의 진탕에서
무슨
저런 꽃이 피지요?

칠흙 어둠을 먹고
스스로 불사른 듯 화안히
피어오른 꽃

열 번 백번 어리석다,
내 생의 부끄러움을 한탄게 하는
죽어서 비로소 꽃이 된 꽃

지옥문 앞에서도 연꽃은 피어오르고 극락문 뒤에서도 연꽃은 싱그럽게 피어난다.

글 | ‌박상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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