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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간다고요?
2019년 05월 01일 (수) [조회수 : 33]
   
 

한 그릇

유마 거사가 병이 났습니다. 붓다는 병문안 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제자들은 다들 손을 내저었습니다. 유마 거사의 내공, 진리에 대한 안목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문안을 자처했다가 자칫 망신만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문수 보살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숱한 문답이 오갔습니다. 나중에는 사리불도 그 자리에 왔습니다. 유마 거사가 말했습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해탈이 있는데, 이름은 ‘불가사의(不可思議)’입니다. 만약 보살로 이 해탈에 머무는 사람은 수미산과 같이 높고 넓은 것을 겨자씨에 넣더라도 더하거나 감하는 바가 없고 수미산도 본래의 모양 그대로입니다. 오직 제도될 사람만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꼭 볼 겁니다.”

유마 거사는 또 덧붙였습니다.
“사방의 큰 바닷물을 한 모공에 넣어도 물고기와 자라와 도롱뇽과 악어처럼 물에 사는 생물을 괴롭히지 않고, 저 큰 바다도 본래 모습이 그대로입니다.”

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수미산이 어떻게 겨자씨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또 어마어마한 바닷물을 어떻게 모공처럼 작은 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넣는대도 물고기와 자라는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을까요. 참 모를 일입니다.
 

두 그릇

당나라 때 마조 선사의 법맥을 잇는 귀종지상 선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강주에서 이발(李渤)이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고위관리인 그의 별명은 ‘만권(萬卷) 거사’였습니다. 지금껏 무려 1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만권(李萬卷)’이라 불렀습니다. 이만권이 귀종지상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경전에는 수미산에다 겨자씨를 넣고, 겨자씨에도 수미산을 넣는다고 합니다. 수미산에다 겨자씨를 넣는 거야 말이 되지만, 겨자씨에다 수미산을 넣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까?”
이 질문을 받고서 귀종 선사가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국가에 어떤 공로가 있어서 이렇게 출세를 하셨소?”
“화상께서는 제가 만권의 책에 의해 출세를 한 줄 모르신단 말입니까?”
“공은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시오?”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러자 귀종 선사가 이렇게 찔렀습니다.
“당신의 몸집이 크다고는 하나, 그 어디에 1만 권의 책이 들어갈 수 있겠소?”
이 말을 듣고 이만권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세 그릇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을 따집니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을 따지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따집니다. 그렇게 수미산과 겨자씨를 따집니다. 수미산은 크고, 겨자씨는 작으니까요. 그러니 큰 것 속에 작은 게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작은 것 속에 큰 게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상식입니다.

그럼 이 상식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의 눈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눈은 세상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어떤가요. 수미산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겨자씨는 정말 너무나 작습니다. 그러니 들어갈 수가 없지요. 저렇게 큰 산이 어떻게 저 작은 씨앗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게 우리의 안목입니다.
그런데 유마 거사의 안목은 다릅니다. 그는 ‘수미산의 껍질’이 아니라 ‘수미산의 알맹이’를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수미산의 모습은 커다란 덩어리(色)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덩어리는 결국 ‘비어있는 덩어리(色卽是空)’입니다. 그게 수미산의 알맹이입니다. 겨자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은 ‘작은 덩어리’지만, 알맹이는 ‘비어있는 덩어리(色卽是空)’입니다.

이런 이치를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수미산의 정체와 겨자씨의 정체가 통하게 됩니다. 둘 다 ‘비어있는 덩어리’이니까요. 그때는 수미산이 겨자씨 속으로 들어가고, 겨자씨가 수미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름과 기름이 섞이고, 물과 물이 섞이듯이 말입니다. 자유자재로 들락날락 합니다.
 

네 그릇

‘이만권 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1만 권이나 읽었지만 이만권의 눈은 세상의 겉모습만 볼 뿐입니다. 그래서 귀종 선사가 그 안목을 깨트리기 위해 선문답으로 두드리는 겁니다. “당신의 몸집이 큰 것은 알겠소. 그런데 아무리 몸이 크다 한들, 어떻게 1만 권의 책이 들어갈 수 있겠소?”라고 말이지요. 책의 겉모습은 ‘수십 장 혹은 수백 장의 종이 묶음’입니다. 그런 책을 1만 권이나 내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겠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건 ‘책의 겉모습’이 아니라 책의 내용, 다시 말해 ‘책의 알맹이’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1만 권의 책을 이만권이 먹을 수가 있는 거지요. 귀종 선사는 책에 대한 문답을 통해 “세상의 겉모습만 보지 말고, 삼라만상의 알맹이를 보아라”는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삼라만상의 알맹이’를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국경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랑 친해, 저 사람은 어쩐지 껄끄러워.” 이처럼 내가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국경도 있고, 차마 넘지 못하는 국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날 때는 마음이 편한데, 누구를 만날 때는 마음이 유독 불편하지요.
그런데 유마 거사의 가르침처럼  ‘당신의 알맹이’와 ‘나의 알맹이’가 둘이 아님을 깨달으면 어찌 될까요. 그때는 국경이 사라집니다. 수미산과 겨자씨 사이에 놓여 있던 철조망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국경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천 개의 땅, 만 개의 땅으로 갈라져 있던 나라가 하나의 땅이 됩니다. 국경이 사라지니 하나의 나라가 되는 거지요. 그런 나라가 내 안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부처님은 그 나라를 ‘불국토(佛國土)’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유마 거사와 귀종 선사의 선문답 일화에는 ‘불국토로 가는 길’이 숨어 있습니다. 무수한 겨자씨마다 수미산이 깃들어 있고, 무수한 수미산마다 겨자씨가 깃들어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 문을 두드려 볼까요. 똑! 똑! 똑!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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