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9 월 14:48
로그인
> 뉴스 > 기획칼럼 > 특집기사
     
알면 저절로 멈추는 것들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말씀에서(4)
2019년 04월 01일 (월) [조회수 : 20]

숨쉬기와 차 마시기, 그 효과는 놀라웠다.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것, 생명활동의 바탕이 호흡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하고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향긋함이 코끝을 스치고, 달콤함이 혓바닥을 적시다가 입천장에 맴돌고, 따끈한 온기가 식도와 위장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 그것이 한 잔의 차였다. 그런 차를 매일, 그것도 하루에 몇 잔씩 마시면서도 나는 이 향기와 맛과 촉감이 주는 위로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숨쉬기와 차 마시기.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행동이지만 그것에 집중해 본 효과는 놀라웠다. 머릿속이 찌릿찌릿하더니 피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지고, 어깨와 팔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온몸이 이완되는 게 느껴졌다. 시선이 거두어지고 초점이 또렷해지더니 눈이 시원해지고 앞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머릿속이 맑아지고 가슴이 저절로 개운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 하고 당면한 문제에 대처할 방안을 찾아 골머리를 앓을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며칠 후, 그가 다시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제 권유대로 숨쉬기와 차 마시기를 해 보셨군요.”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표가 나지요. 이렇게 미간의 주름이 펴지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지 않았습니까? 지난번 나를 찾아왔을 때에 당신의 눈빛이 얼마나 차갑고, 말도 행동도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겁니다.”
그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부처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생각과 감정은 나무에 비유하자면 이파리와 같습니다. 이파리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나부낍니다. 이파리의 바탕이 되는 가지, 가지의 바탕이 되는 줄기, 줄기의 바탕이 되는 뿌리와 같은 생명활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망각한 채 작은 이파리처럼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갑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숨을 쉬면서 제대로 숨을 쉬고, 차를 마시면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밥을 먹고, 걸으면서 제대로 걸어보았더니, 제가 쓸데없는 생각과 감정에 공연히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겠더군요.”
부처님의 눈빛이 반짝이셨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쓸데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 매우 타당하고, 매우 중요하고, 매우 급박한 일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을 붙들고서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호흡이나 움직임 등 일상 속 행동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됩니다. 당신 표현대로 ‘쓸데없는 짓’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지요.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게 됩니다. 억지로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저절로 그만두게 됩니다. 이런 것을 ‘지(止)’ 즉 ‘멈춤’이라 합니다.”

그의 눈빛 역시 반짝였다.
“제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말로야 전부터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감정’이란 소리를 곧잘 했지요. 하지만 이제 알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 ‘생각’과 ‘감정’을 매우 중요한 사건처럼 여겼다는 것을 말입니다. 중요하다고 여기니까 매달렸던 것입니다. 정말 쓸데없다고 여겼다면 누가 등 떠밀어도 하지 않았겠지요.”

부처님이 웃으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각이 이번 한 번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을 사로잡아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생각과 감정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면 호흡이나 움직임에 집중하는 훈련을 꾸준히 이어가야 합니다. 당신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생각과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점점 깊이 당신에게 스며들 것입니다. 그것이 선정(禪定)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 새롭게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관찰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 관찰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라는 것입니까?”
“관찰을 통해 너무도 당연하지만 늘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게 뭡니까?”
“당신의 몸과 마음이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임과 흩어짐이 잠시도 쉬지 않고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모양과 성질이 변화하는 것에는 고정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이름을 붙일만한 고정된 ‘무엇’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갸우뚱거렸다.

부처님이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어깨를 다독이셨다.
“지금은 제 말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러주는 대로 한번 해보세요. 해보면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당신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특별한 관찰 방식이라도 있습니까?”
“제 말씀을 잘 듣고 잘 기억했다가 틈나는 대로 관찰해 보십시오. 오직 당신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당신의 몸에 집중하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님의 목소리가 낭랑한 노랫가락처럼 퍼졌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글 | 성재헌
글 | 성재헌의 다른기사 보기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조계사뉴스
백중(우란분절) 49재 회향
종로구청과 ‘불교문화재 보존관리 협력...
칠석 3일기도 봉행
문화
방송
미카와 소연: 연꽃축제에 '가봤습...
조계사 칠석3일기도회향 지현스님 ...
조계사 신중기도회향 원명스님 법문...
기획칼럼
보살(2)
불청지우(不請之友)
만공 스님은 왜 숭늉그릇을 박살냈을까...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144)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 Tel 02-768-8600 Fax 02-720-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수용
Copyright 2010 미디어조계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jogyes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