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8 일 10:14
로그인
> 뉴스 > 기획칼럼 > 특집기사
     
박상준의 선시(禪詩) 이야기
2019년 04월 01일 (월) [조회수 : 52]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고기라는 뜻의 역수어(逆水魚)가 있다. 죽은 고기는 그냥 물에 둥둥 떠내려가거나 물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역수어는 힘차게 거슬러 오른다. 퍼득퍼득거리면서 헤엄쳐 오른다.
생사의 거센 물결 속을 헤엄쳐 오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까딱 아차하면 떠내려가기 쉽다. 열심히 거슬러 올라간다고 애쓰고 힘써보아도 제자리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하(九河)스님이 부석사에 올라 시를 지었다. 꿈속의 나그네가 되어 부석사에 올라 망망대해를 다 마셔 버린다.

春夢客上石泉庵 춘몽객상석천암
無口吸盡茫茫海 무구흡진망망해
如人忽問菩提道 여인홀문보리도
不答自歸白雲間 부답자귀백운간

봄 꿈속의 나그네가
바위샘 암자에 올라가서
없는 입으로 망망한 바다를 들이마셨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홀연히
보리도를 물어온다면
대답하지 않고
흰구름 속으로 스스로 돌아가리라

봄 꿈속의 나그네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에 산을 거슬러 오른다. 바위틈새로 샘물이 솟아 나오는 암자에 오른다. 그리고는 그 샘물 속에 들어있는 망망대해를 없는 입으로 모조리 들이마신다.
허겁지겁 산을 오르느라고 입을 어디에다 흘려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입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온몸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온몸이 없어진 상태에서 샘물 속에 들어있는 망망대해를 남김없이 들이마셨으리라.
그 와중에 보리도를 묻는 사람이 있다. 망망대해를 들이마셔서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궁금하겠는가. 아무 말 없이 흰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구하스님이 운암(雲庵)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애도하는 게송을 지었다.

雲起曾無起 운기증무기
滅時亦無滅 멸시역무멸
無滅無起處 무멸무기처
運庵劫外春 운암겁외춘
구름이 일어나도 일찍이 일어남이 없었고
사라질 때에도 또한 사라짐이 없다네
사라짐도 없어지고 일어남도 없어진 그곳에
운암이여 그대는 겁 밖의 봄이로다

겁 저편 바깥에 있는 봄소식을 따뜻하게 알려주는 시이다. 겁 저편에서는 구름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라져도 새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운암스님은 그 일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곳으로 틀림없이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걸어 들어갔는냐 뛰어들어갔느냐 날아 들어갔는냐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일어나고 사라짐이 사라져버린 봄을 즐길 뿐이다.

너무 잘 알려져 있는 게송이 떠오른다.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네
뜬구름 그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생사가 오고 가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라네

허공에 뜬구름 하나가 떠올라서 온갖 모양으로 피어나다가 사라질 듯 하다가 또다시 다른 모양으로 피어오른다. 양떼구름이 되기도 하고 말달리는 모양이 되기도 하고 새털구름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라지고 나면 그저 허공일 뿐이다.

구하스님의 부채시 선자음(扇子吟)을 읽어본다.

紙無紙竹無竹 지무지죽무죽
淸風何處來 청풍하처래
紙空竹空處 지공죽공처
淸風自往來 청풍자왕래

종이에 종이 없고 대나무에 대가 없는데
맑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종이도 텅 비고 대나무도 텅 빈 곳에
맑은 바람이 저절로 오락가락 한다네

부채질 따라서 바람이 일고 바람 따라서 구름이 오고 간다.

글 | ‌박상준 (자유기고가)
글 | ‌박상준 (자유기고가)의 다른기사 보기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조계사뉴스
이웃과 함께 행복한 ‘조계사 김장나눔...
홀로어르신에 겨울나기 전기장판 지원
111일 화엄성중기도 회향 법회 봉행
문화
방송
조계사 신중기도입재 법산큰스님법문...
조계사 일요법회 일감스님 법문(2...
조계사 일요법회 성오스님 법문(2...
기획칼럼
보살(2)
불청지우(不請之友)
만공 스님은 왜 숭늉그릇을 박살냈을까...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144)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 Tel 02-768-8600 Fax 02-720-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수용
Copyright 2010 미디어조계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jogyes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