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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오리 떼의 울음은 어디로 갔을까?
2019년 04월 01일 (월) [조회수 : 17]
   
 

한 그릇

육조 혜능 대사는 제자인 남악 회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의 반야다라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 밑에서 말 한 마리가 나와서 천하의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라고 했다.” 반야다라는 달마 대사의 스승이자, 인도에서 붓다의 법을 이은 27대 조사였습니다. 혜능 대사의 말처럼 회양 선사의 문하에서 걸출한 선지식이 나왔습니다. 그가 바로 마조 도일(709~788) 선사였습니다. 
저는 마조 선사의 고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의 스팡현입니다. 그곳에 나한사(羅漢寺)가 있었습니다. 마조 선사가 서른 한 살 때 출가한 사찰입니다. 일주문으로 들어섰습니다. 큼지막하게 ‘제일총림(第一叢林)’이라고 쓴 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선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마조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찰의 뜰 가운데 섰습니다. 굵다란 나무 위에 새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삐옥, 삐~옥’. 새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마조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새 울음’에 얽힌 마조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두 그릇

1200년 전의 일입니다. 마조 선사와 제자 백장百丈은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떨어지는 강기슭을 거닐고 있었지요. 그때 한 무리의 들오리 떼가 서쪽 하늘로 줄지어 날아갔습니다. 해 저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V’자를 그린 들오리 떼는 ‘끼룩, 끼룩’ 울면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조 선사가 백장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냐?”
“들오리 떼 울음소리입니다.”
짧은 문답이 오가고 둘은 다시 걸었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마조 선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들오리 떼 울음소리가 어디로 갔느냐?”
스승의 물음에 백장이 답했습니다.
“멀리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마조 선사는 느닷없이 백장의 코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세게 비틀었습니다. 당황한 백장은 아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얏!”
그걸 본 마조 선사는 제자에게 호통을 치며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멀리 날아갔다더니 여기 있지 않느냐!”
 
저는 나한사의 뜰에 서서 눈을 감았습니다. ‘마조와 백장의 들오리 떼 일화에 담긴 가르침은 무엇일까.’ 나한사의 뜰에서 울어대던 새소리가 뚝 그쳤습니다. 그 사이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뜰에는 고요만 남았습니다. ‘나한사의 새 울음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마조는 왜 백장의 코를 비틀었을까. 백장이 아프다고 소리지르자 “새 울음 소리가 여기에 있지 않느냐”며 마조는 왜 호통을 쳤을까.’  

세 그릇

사람의 눈을 자세히 보세요. 안을 향하고 있나요, 아니면 밖을 향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바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바깥만 보면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아가지요. 그걸 불교에서는 ‘색(色)’이라 부릅니다.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색(色)을 붙잡으려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젊은 백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역시 ‘들오리 떼의 울음’만 봤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니까요. 그렇게 백장의 눈에 보이던 들오리 떼의 울음이 갑자기 뚝 그쳤습니다. 서쪽 하늘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백장은 “어디로 가버렸느냐?”는 스승의 물음에 안목이 담긴 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들오리 떼의 울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백장은 진정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조 선사는 다릅니다. 그는 들오리 떼의 울음이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작용하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압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색(色)이 비어 있다.” 다시 말해 ‘색즉시공(色卽是空)’입니다. 세상의 모든 색(色)은 공(空)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생겨난 색(色)은 한동안 작용하다가, 다시 공(空)으로 돌아갑니다. 조용한 강기슭에서 문득 들오리 떼 울음이 들리고, 한동안 계속 들리다가,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그러니 들오리 떼 울음은 결국 어디로 돌아간 건가요? 그렇습니다. 공(空)으로 돌아갔습니다. 노을이 지는 강의 서쪽 너머로 들오리 떼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다시 공(空)으로 돌아간 겁니다.

마조는 제자 백장에게 그걸 물은 겁니다. 색(色)의 정체를 깨우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백장은 “들오리 떼 울음이 멀리 서쪽으로 따라갔다”고 엉뚱한 답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아직 색(色)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조 선사는 백장의 코를 잡고 세게 비틀었습니다. 약하게 비틀면 “아얏!”하는 비명 소리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아니나 다를까요. 코를 세게 틀었더니 백장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럼 “아얏!”하는 백장의 비명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맞습니다. ‘공(空)’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공(空)에서 나온 들오리 떼 울음과 공(空)에서 나온 백장의 비명은 속성이 통합니다. 둘 다 공(空)에서 나와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는 ‘비어있는 색(色)’이기 때문입니다.

네 그릇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마조 선사는 왜 그걸 그토록 강조했나. 들오리 떼의 울음이 ‘비어 있는 색(色)’임을 알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는 건가. 그게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 이건 단순히 선문답 놀이에 불과한 게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상처를 녹여버릴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바위’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슴에 깊이 박힌 돌덩어리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쉽사리 부서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상처는 영원히 간다고 믿습니다. 바위 덩어리가 오래가듯이 말입니다. 왜 이런 착각이 빚어지는 걸까요. 그 또한 사람들이 ‘색(色)’만 알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색(色)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달리 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색(色)은 비어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녹지 않는 상처는 없다는 말입니다. 비워지지 않는 상처도 없고, 공(空)으로 돌아가지 않는 상처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반박합니다. “내가 입은 상처는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공(空)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처가 정말 ‘비어 있는 색(色)’이라면 벌써 공(空)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반박합니다. 20년 아니, 3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의 상처는 오히려 강해진다고 투덜댑니다. 

왜 그럴까요. 들오리 떼의 울음은 다시 공(空)으로 돌아갔는데, 나의 상처는 왜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질 않는 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되새김질’ 때문입니다. 상처는 색(色)입니다. 그냥 놔두면 다시 공(空)이 됩니다. 그런데 나의 되새김질이 공(空)으로 돌아가던 상처를 끊임없이 다시 불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착(着)’입니다. 만약 상처가 20년 동안 녹지 않았다면, 나의 되새김질이 20년 동안 계속됐다는 말입니다. 색(色)이 공(空)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이치를 ‘나의 되새김질’이 막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들오리 떼의 울음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걸 알 때 우리의 상처도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깨닫게 될 테니까요.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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