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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왜 ‘먼 곳’에만 있을까
2019년 03월 02일 (토) [조회수 : 162]
   
 

한 그릇

A대학의 교수를 만났습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그분이 말하더군요. “저는 정말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에게는 세 가지 꿈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정말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리라 고대했다고 합니다.
 
그 꿈들이 뭐냐고요? 첫 번째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5년 안에 박사 학위를 따는 일’이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5년 안에 끝내려면 정말 열심히 논문을 써야 하고, 아주 좋은 평가도 받아야겠지요. 그게 1순위로 중요한 꿈이었다고 하더군요. 2순위는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교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한국 사람이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서 교수가 되는 일이 간단치는 않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꿈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백인들이 사는 근사한 동네에다 집을 장만하는 일’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참 멋진 순간이지요.
 
비단 그 교수님만 그런 꿈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나요? “이 일만 이루어지면 나는 참 행복할 거야”하며 우리가 내내 고대하는 삶의 순간이 있지 않나요? 가령 ‘아이들이 대학만 가면 나는 이걸 해야지’‘정년퇴직만 하면 제주도와 강원도, 유럽에도 가서 몇 달씩 살아봐야지’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참 행복하겠지. 그렇게 꿈꾸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다들 그걸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
 
그 교수님은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습니다. 하루 4시간 이상 잔 날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결과도 좋았습니다. 결국 5년만에 논문이 통과되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미국에서 손 꼽히는 대학의 교수도 됐습니다. 학교 근처 백인 중산층이 사는 근사한 동네에 아주 아름다운 집도 구입을 했습니다. 세 가지 꿈이 모두 이루어진 겁니다.
 
“드디어 이사를 했어요.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세 가지 꿈의 달성을 알리는 마침표 같은 순간이었겠죠. “그날만 기다렸어요. 정말 행복할 줄 알았어요. 내 삶은 이제 행복한 나날만 이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달랐습니다. 그게 아니더군요. 오히려 굉장히 허한 감정만 밀려왔습니다. 거기에 행복은 없었습니다.” 
 
두 그릇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매화’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내 삶에서 매화가 피는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가니까요. 삶은 참 녹녹치 않습니다. 늘 예상치 않은 찬바람이 쌩쌩 불어닥칩니다. 그럴 때면 “왜 내 삶은 늘 겨울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삶은 늘 춥습니다. 겨우내 쌓인 눈은 녹지도 않습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질 때면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립니다. 또 찾아갑니다. 겨울 끝,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 매화를 찾아서 말입니다. 내 인생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려줄 꽃. 그 찬란한 ‘터닝 포인트’를 찾아서 말입니다. 그 교수님이 꿈꾸었던 것도 그런 ‘터닝 포인트’의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산과 들을 뒤집니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뒤집니다. “내가 옛날에는 행복했던가. 내 삶에 매화가 피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 어릴 적에는 그런 순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아무리 찾아도 매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사람들은 추위에 지쳐갑니다. 다들 기진맥진해서 결국 매화 찾기를 포기합니다.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랬더니 내 집 뜰에 매화가 이미 피어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매화가 말입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사실은 모르는 이야기일 겁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밖으로 나가서 눈 속을 헤치며 매화를 찾아다니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행복을 찾고 있으니까요. 

세 그릇

사람들은 ‘먼 곳’에 익숙합니다. 늘 먼 곳을 바라보고, 먼 곳을 동경합니다. ‘님은 먼 곳에’란 노래도 있잖아요.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순간도 늘 그처럼 ‘먼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의 끝을 알리는 매화도 항상 멀리 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말입니다. 별들이 울어대는 고흐의 그림을 봐도,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읊조려봐도 그렇습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지구에 사는 이들은 달을 동경합니다. 여기에는 없는 별, 먼 곳에는 있는 별. 교수님의 꿈도 그랬습니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이사를 하면 찾을 것만 같은 별. 지구에서 달에만 가면 손에 잡힐 것 같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막상 달에 가서 보면 어떨까요. 환하고 둥글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달에는 먼지가 자욱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도 없고 강도 없고 삭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달에서 막상 살아보면 어떨까요. 그때는 틀림없이 푸르디 푸른 지구를 동경하게 될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달에 가서, 화성에 가서. 목성에 가서, 아니면 더 먼 우주에 가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지구가 바로 그런 별입니다. 그토록 동경하는 별, 그토록 갈망하는 별, 그토록 살고 싶은 별. 우리가 바로 그 별에 살고 있습니다. 그게 지구입니다. 당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입니다.
 
그러니 매화는 언제 필까요. 겨울의 끝자락일까요, 아니면 봄이 오는 초입일까요. 아닙니다. 행복의 매화는 사시사철 피어납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내 집 뜰앞에서는 그런 매화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행복의 매화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반박합니다. “내 삶은 한겨울이야. 여기에는 봄도 없고, 매화도 없어. 오로지 추위 뿐이야.” 정말 그럴까요. 고통의 순간, 슬픔의 순간, 아픔의 순간에도 매화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행복의 매화는 쉬지 않고 피어납니다. 하루 4시간씩 자며 공부하던 시절, 그런 고달팠던 순간들 속에 정말 매화가 없었을까요.
 
차분히 들여다보세요. 100% 행복이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100% 슬픔도 없습니다. 행복 속에도 슬픔의 순간이 있고, 슬픔 속에도 웃음의 순간이 있습니다. 매화는 그렇게 피었다가 지고, 또 피었다가 지는 겁니다. 피는 순간에도 지고, 지는 순간에도 피어나는 겁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가요. 내게 이미 주어진 행복을 깨닫는 일. 이걸 깨달으면 달라집니다. 폭설로 뒤덮인 눈밭이 순식간에 매화밭으로 변하니까요.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매화향을 맡게 되니까요. 왜냐고요? 우리의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매순간 매화가 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하겠죠. 

“날마다 좋은 날!”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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