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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6)
2019년 02월 01일 (금) [조회수 : 68]
   
 

그리운 어머니.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1년간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생활 중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핸드폰을 반납하고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분투하는 이들은 가족과 친구, 연인이 그립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숙학원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집안의 이들이지요. 그렇지 못한 이들은 시험의 기회마저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청년들 대다수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꿈꾸는 대신 공무원을 열망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어머니, 최근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동학이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한국사회나 불교계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전 세계적으로 출가와 재가를 포함해 불교 관련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이처럼 한국 불교계는 전문가들로 넘쳐나게 되었지만, 깨달은 도인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외국처럼 불교를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이들이 늘수록 불교의 진리를 체득한 도인들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의상스님이 제자와 문답을 나눈 것을 기록한 『화엄경문답』은 다음처럼 끝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중도의 지혜를 속히 닦아야 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많은 법문이 이처럼 닦는 것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십이연기의 지분(支分)

어머니, 지난 시간에는 십이연기 지분 가운데 ‘갈애’와 그 조건이 되는 ‘수(受)’를 공부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촉(觸)’과 ‘육처(六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7. 촉(觸)

“비구들이여, 촉이란 무엇인가? 촉은 여섯이 있다. 안촉(眼觸),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이다.”

어머니, 지난 시간 ‘수(受)’, 즉 느낌은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가지 접촉으로 인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발생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촉은 산스크리트 스파르사(sparsa)를 번역한 말로 접촉, 혹은 닿음이란 뜻입니다. 12연기의 지분 가운데 실체로서 뜻을 지닌 것은 없지만, 촉은 연기적 의미가 더욱 강한 개념입니다. 촉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에 들어간 경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 때 불이 탁 켜지면 방 가운데 놓인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오게 되지요. 그런데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니 꽃병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어떤 사물을 보고 그것이 꽃병이라고 알게 되는 세 가지를 합쳐서 안촉이라고 부릅니다.

<안촉 = 눈 + 사물 + 꽃병이라 아는 것>

이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되면 촉이란 생기지 않습니다. 눈이 없으면 꽃병을 보지 못할 것이고, 눈이 있어도 꽃병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기, 꽃병이 있네.’라는 인식이 발생하지 않겠지요. 만약 눈으로 꽃병을 본다고 할지라도 꽃병이라는 인식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생아의 눈앞에 꽃병을 보여주어도 아기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나름의 인식작용이 항상 거기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촉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의 대상,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란 세 가지가 합쳐져 발생하는 것으로 ‘삼사화합(三事化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삼사화합이 늘 올바르게 일어나는 일은 드물지요. 다시 말해 꽃병을 보고 꽃병이라고 정확히 아는 것도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산길을 혼자 걷다가 길고 물컹거리는 뭔가를 밟고 놀라는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그 사람은 자신이 뱀을 밟았다고 생각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었습니다. 분명 지난밤에 그가 새끼줄을 밟고 느낀 것은 두렵고 괴로운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아침에 그가 새끼줄을 볼 땐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분명 그 사람의 발의 감촉과 바닥에 놓인 새끼줄은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인식작용이 달라짐으로써 큰 차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지혜를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하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중생은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기 일쑤이고, 수행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이는 새끼줄을 새끼줄로 봅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이는 새끼줄을 보고 공(空)함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새끼줄은 그 자체로 영구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인연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연기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여실지견은 모든 현상을 육신의 눈으로 보고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상, 즉 연기법을 꿰뚫어 아는 지혜입니다. 
경전에서는 촉이 우리의 신체기관인 육처에 따라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 종류의 촉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여섯 종류의 삼사화합을 바탕으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등이 발생하게 되며 이 느낌을 바탕으로 다시 애착과 집착이 일어나 생과 노사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8. 육처(六處)

“비구들이여, 육처란 무엇인가? 안처, 이처, 비처, 설처, 신처, 의처이다.”

육처란 말 그대로 풀면 여섯 가지 영역이란 뜻입니다. 여섯 가지의 영역은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생각이지요. 육처보다는 육근(六根)이라고 자주 부릅니다. 육처란 단순히 신체적 감각기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작용을 포함한 말입니다. 눈은 본다는 작용을 하고, 귀는 듣는 작용을 하지요. 각각의 기능은 서로 다릅니다.
어머니, 그런데 저는 육근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스님이 있습니다. 중국 선종 가운데 조동종의 종조(宗祖)인 동산양개(洞山良介, 807∼869) 화상의 일화이지요. 양개화상이 어릴 적 스승과 함께 『반야심경』을 읽다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에게 묻습니다.
“스님, 제 얼굴에는 이렇게 눈, 코, 입, 귀 등이 버젓이 있는데, 왜 경전에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없다(無)라고 하는 것입니까?” 
스승은 화상이 자신이 가르칠 근기가 아님을 깨달아 화상을 영묵선사(靈黙禪師)에게 가서 배우게 합니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는 듯 수행이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진솔함과 진리에 대한 의문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불자들이 기본적으로 외우고 있고, 불교의례에 빠지지 않고 독송되는 이 경은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참으로 당혹스런 말들을 담고 있습니다.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제도 없다고 하고, 오온, 육근, 그리고 지금 함께 공부하고 있는 십이연기도 없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부처님의 말씀을 온통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경인데 불자들이 이 경전을 독송할 때마다 부처님을 배반하는 것 같아서 고민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반야심경』의 의미를 훤히 알아서 별 의문이 없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을 몰라도 의당 좋은 말씀이겠거니 하면서 무작정 외우는 경우이죠. 한국의 불자들은 동산양개 화상보다 근기가 수승해서 의문이 없을 것이라 믿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시 십이연기 가운데 육처, 즉 육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육처를 두고 눈, 코, 귀 등의 신체의 기관이 아닌 의식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불교학자들도 있습니다. 만약 육처가 신체기관이라면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반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인간의 감각기관인 육처로 인해 삼사화합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윤회가 발생하니 육처가 신체로서 생생한 상태라면 열반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도 일리가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기에 『반야심경』에서는 애초에 십이연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육처가 의식이다, 신체다, 등으로 가르기 이전에 신체와 의식을 모두 포함한 연기적 작용으로 육처를 이해하는 것이 십이연기의 본래 뜻에 더 맞을 것입니다. 십이연기란 누누이 말씀드리듯이 연기법과 윤회의 과정을 중생들에게 이해시켜 수행에 나아가도록 하려고 부처님이 설한 것이지 실체적 법칙이나 이론으로 놓고 분석하라고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오늘은 십이연기 가운데 삼사화합인 촉과 삼사화합의 요소 가운데 하나인 육처에 대해서 공부해보았습니다.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아들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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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이야기』 외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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