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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선시(禪詩) 이야기
2019년 01월 01일 (화) [조회수 : 87]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라도 한다면 그 아니 좋은 일이겠는가. 바람이 떨구고 지나가는 이야기라도 좋다. 바람결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이야기라면 귀가 저절로 기울여지기도 한다. 구름이 덮어주거나 하기라도 할라치면 바람도 쉬어갈 틈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잔잔해지면 잔잔한 대로 바람이 거세면 거센대로 그 이야기를 따라가고 싶다.

경허스님의 졸음 시부터 읽어본다.

低頭常睡眠 저두상수면
睡外更無事 수외갱무사
睡外更無事 수외갱무사
低頭常睡眠 저두상수면
머리숙여 항상 졸고 있나니
조는 일 외에
다시 다른일 없다네
조는 일 외에
다시 다른 일 없으니
미리 숙여 항상 졸고 있다네

존다고 표현 했을 뿐 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졸기라도 할라치면 자신이 조는 것을 알아차릴 리가 없다. 경허스님은 자신이 졸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졸고 있다. 졸다가 졸고 졸다가 졸고 있다. 졸다가 깰 틈도 없이 머리숙여 졸고 있다. 왜냐하면 조는 일 외에 다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할 일 없음의 시를 연달아 읽어볼 일이다.

無事猶成事 무사유성사
掩關白日眠 엄관백일면
幽禽知我獨 유금지아독
影影過窓前 영영과창전
일이 없어져야만
오히려 일을 이루게 되나니
사립문 닫아걸고
한낮에 졸고 있다네
깊은 곳에 사는 새들이
나의 외로움을 알아차렸는지
그림자와 그림자가 이어지면서
창문 앞을 지나간다네

그림자가 이어지면서 창문 앞을 지나가는 새들을 알아차림 하고 있으니 이또한 진짜로 졸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할 일이 없어져야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일없음이 오히려 일을 완성함이라는 역설이 역설스럽게 바람처럼 스치운다.

경봉스님의 해돋이 시를 읽으면서 새해를 맞이해볼 일이다.

山頂無雲日上朝 산정무운일상조
乾坤暗色一時燒 건곤암색일시소
花開萬樹啼春鳥 화개만수제춘조
閑坐聽觀碧海潮 한좌청관벽해조
산꼭대기에 구름 없고
아침해가 솟아오르니
하늘과 땅의 어두운 색이
일시에 사그러드네
온갖나무에 꽃피어나니
봄새들이 지저귀는데
한가로이 앉아서 푸른바다
해조음소리를 듣고 있다네

끝없이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나가는 해조음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온갖 나무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은 지저귀고 있다. 새들의 지저귐에 파도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온다. 꽃잎이 피어나면서 파도를 밀어내고 꽃잎 피어남이 잠시 멈춘 사이에 파도가 밀려온다. 파도가 꽃잎을 피워내는 것인지 꽃잎이 파도를 밀고당기는 것인지는 알필요도 없고 안다해도 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산꼭대기의 구름까지 파도가 밀어내버렸다. 해조음소리에 구름마저 멀리 물러나 앉았다.

경봉스님의 시 한수를 더 읽어본다.

靈鷲淸風吹不盡 영축청풍취부진
綠陰紅鳥忽飛來 녹음홍조홀비래
山高水碧無人境 산고수벽무인경
百草頭邊萬法開 백초두변만법개
영축산의 맑은 바람
끝없이 불어오는데
녹음 속에서 붉은 새가
홀연히 날아오르네
산은 높고 물 푸르러
사람없는 경계인데
온갖 풀잎 끄트머리에서
만법이 열리는구나

맑은 바람이 영축산에 끝없이 불어온다. 또 끝도 없이 불어가기도 한다. 끝없이 불어오고 불어가는 중에 녹음 속에서 붉은 새가 홀연히 날개를 퍼드득거린다. 날개의 퍼드득거림에 영축산이 왔다갔다할 정도이다. 사람도 없는데 산은 높고 물은 푸르르다. 사람이 있어도 물은 푸르르고 산은 높을 것이다.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간에 온갖 풀 끝에서 만법이 활짝활짝 열린다.

글 | ‌박상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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