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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불국사에 숨은 비밀
2019년 01월 01일 (화) [조회수 : 72]
   
 

한 그릇

신라는 불교의 나라였습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 이름도 ‘불국사佛國寺’입니다. ‘불국’은 ‘부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신라의 왕명에도 ‘법흥왕法興王’이나 ‘진흥왕眞興王’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일으키고, 진리를 일으키자는 뜻입니다. 그러니 신라의 국가적 지향점은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왕비의 이름에도 ‘마야 부인’(제26대 진평왕의 부인)이 있었을까요. 마야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늘 이런 지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발을 딛고 선 이 땅에 이상향을 건설하는 일 말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는 탑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석가탑, 또 하나는 다보탑입니다. 석가탑은 무척 단조롭고, 다보탑은 아주 화려합니다. 저는 불국사 뜰에 설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왜 대웅전 앞뜰에 저런 탑을 세웠을까.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나, 전혀 다른 양식의 탑들을 세웠을까.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니, 이 탑들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그릇

인도를 여행하다가 영축산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독수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영축산입니다. 양산 통도사의 뒷산 이름도 ‘영축산’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그리 부른다고 합니다. 인도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꽃을 들자 제자 가섭만 빙긋이 웃었다는 ‘염화미소’일화의 현장입니다.
 
부처님은 거기서 ‘묘법연화경(법화경)’을 설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땅을 뚫고 탑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를 ‘석가여래’라고 부르고, 땅에서 올라온 탑을 ‘다보여래’라고 부릅니다. 이게 석가탑과 다보탑에 얽힌 불교적 전승입니다.
 
이제 다시 물음이 올라옵니다. 그럼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불국사 대웅전 앞뜰의 두 탑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석가탑에는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설화가 담겨 있습니다.
 
때는 신라시대입니다. 아사달과 아사녀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백제의 후손인 아사달은 당대 최고의 석공이었습니다. 아사녀는 남편 아사달이 석가탑을 완성하는 날만 기다립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갔습니다. 그래도 소식이 없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아사녀는 불국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탑이 완성되면 불국사 근처의 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아사녀는 못에 탑 그림자가 비치기만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남편의 탑 만드는 작업이 끝날 날을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못에는 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습니다. 지친 아사녀는 결국 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탑을 완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석가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명 ‘무영탑無影塔’으로도 불립니다. ‘그림자가 없는 탑’이란 뜻입니다. 

세 그릇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석가탑. 이 일화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석가탑에는 그림자가 없을까요. 그래서 무영탑으로 불리는 걸까요. 석가탑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석가탑은 다름 아닌 ‘공空’을 의미합니다. ‘공空’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림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탑은 붓다의 자리, 진리의 자리, 깨달음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걸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거기서 세상 만물이 창조됩니다.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생기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생깁니다. 그처럼 공空의 자리에서 색色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공空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허무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한창조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자리입니다. 세상 만물이 창조되는 바탕 없는 바탕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자 탑이 솟는 겁니다. 공의 자리에서 색이 ‘툭!’ 튀어나오는 겁니다.
 
찬찬히 살펴보세요. 비단 불국사에만 그런 탑이 있는 건 아닙니다. 아니, 그럼 어디에 그런 탑이 있느냐고요?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입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수시로 탑이 솟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바탕에서 생각이 툭 나올 때 탑이 솟는 겁니다. 내가 던지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창밖에 내리는 비, 나무를 흔드는 바람,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도 모두 솟아나는 탑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 이 우주에는 그런 탑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 탑 하나 하나가 얼마나 귀한 보물인가요. 그래서 ‘다보多寶’입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다보탑이고, 이 우주가 거대한 ‘탑림塔林ㆍ탑의 숲’입니다.

네 그릇

불국사 대웅전의 붓다가 설합니다. “석가탑空과 다보탑色, 둘을 동시에 보라. 거기에 불국토가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다보탑 천지입니다. 그런데 석가탑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둘을 동시에 볼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눈에는 다보탑만 보이는데 말입니다. 석가탑을 찾아야 불국토를 볼 텐데 말입니다.
 
눈을 감고 궁리해 보세요. 석가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의 일상에서는 수시로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 짜증이 영원한가요? 아닙니다. 짜증은 잠시 작동했다가 사라집니다. 시간과 함께 사라지죠. 왜 그럴까요. 짜증의 속성이 공空하니까요. 바로 그 짜증色이 다보탑입니다. 공空함이 석가탑입니다. 둘을 동시에 보면 어떻게 될까요. 짜증이 녹고 불국토가 드러납니다. 그러니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고, 석가탑 안에 다보탑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묘한 비밀이고, 어찌 보면 놀라운 과학입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에 담긴 이 이치를 꿰뚫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루,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부처님 나라를 살 수 있게 되지요. 해가 지는 서쪽 끝에만 있는 줄 알았던 서방정토가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좋은 날’이 이어집니다.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글 |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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