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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 (6)
2018년 08월 01일 (수) [조회수 : 278]

그리운 어머니.
얼마 전, 집안을 청소하다가 보라색 줄기가 올라온 고구마 몇 개를 찾게 되었습니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엔 마음이 쓰여서 작은 컵에 물을 담아서 꽂아두었더니 푸른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새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게 됩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존귀하다는 붓다의 말씀이 하찮은 고구마 몇 덩이를 통해 자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머니, 독일의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란 이는 “세상에 신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다는 자체가 신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요즘에 들어서야 이 말의 의미를 조금 알 듯 합니다. 이를 어머니란 존재와 빗대어 생각하면 어머니란 이름 속에 신비를 찾을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롭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어머니란 존재는 이미 세상을 환히 밝히는 꽃이겠지요. 오늘은 생명을 키워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삼배를 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바른 삼매>

어머니, 오늘은 팔정도 가운데 마지막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정정(正定), 즉 ‘바른 삼매’ 혹은 ‘바른 선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삼매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죠. 흔히 독서삼매에 빠져있다고 하면 책에 푹 빠져서 누가 불러도 모르는 상태, 즉 완전한 집중과 몰입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삼매를 보통 심일경성(心一境性)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마음이 경계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내가 책이 되고, 책이 내가 되는 그런 경지입니다. 그런데 팔정도 가운데 ‘바른 삼매’는 우리가 아는 몰입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매의 지향점입니다. 책에 푹 빠진 것은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거나, 시험을 잘 보겠다거나, 지식을 쌓겠다는 등등의 욕망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바른 삼매, 즉 선정에 든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집중을 통해 세속의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해탈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입니다.
우선 맛지마니까야의 설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전은 네 가지 바른 삼매,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내용이 상당히 깁니다. 월활한 이해를 위해서 네 부분으로 쪼개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1.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입니까?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과 불선법을 떨쳐버린 뒤,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있고, 욕망을 떨침으로써 생겨나는 기쁨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삼매에 머뭅니다.”

여기서 불선법(不善法)이란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앞서 배운 팔정도의 항목들을 벗어난 것들이지요. 다시 말해 감각적 욕망과 불선법을 떨쳐버려서 첫 번째 삼매에 머문다는 의미는 팔정도의 실천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삼매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뜻이니 각별하게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은 무엇을 말할까요? 거친 생각은 어떤 상황이나 경계에 맞물려 일으키는 생각을 말하고, 미세한 생각이란 평소에 쭉 이어져온 생각을 의미합니다. 결국 첫 번째 선정에서는 우리의 이런저런 분석과 분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삼매가 주는 희열과 행복도 생겨나는 단계입니다.

첫 번째 삼매는 불교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고행을 통해 해탈을 이루려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행을 재개해 정각을 이룬 근원이 첫 번째 삼매에 있다고 여러 경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 왕자로 국가의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잠부나무 아래에서 이 첫 번째 삼매에 든 기억을 되살려 후에 이를 통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2. “여기 비구는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모아져서,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삼매에 머뭅니다.”

두 번째 삼매는 거칠고 미세한 생각은 사라지고 삼매가 주는 희열과 행복을 얻는 단계입니다. 거칠고 미세한 생각을 한자로 표기하면 심사(尋伺)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심사를 분석적 언어작용이라고 풀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언어에서 분별심이 일어난다고 보아서 언어적 분별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언어라는 게 원하면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다가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은 심사가 사라진 단계를 거쳐 네 번째 선정까지 이르셨는데, 언어가 사라졌다면 나중에 자신의 깨달음을 어떻게 중생들에게 전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도 언어이고, 선사가 ‘언어를 벗어난 경지’라고 말하는 것도 언어입니다. 문제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인 것이죠. 그래서 심사의 소멸을 무조건 언어가 사라진 경지라고 받아들이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심사는 우리 마음 속 욕망에 기인하는 분별적인 생각으로 이해해도 족하리라 봅니다.
 
3. “여기 비구는 희열이 떠난 상태의 평온과 바른 알아차림을 지녀서, 평온하고 바르게 알아차리는 행복이 있는 세 번째 삼매에 머뭅니다.”

어머니, 세 번째 삼매와 두 번째 삼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삼매의 단계에서 우리는 네 가지 요소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거친 생각, 미세한 생각, 희열, 그리고 행복입니다. 두 번째 삼매에서는 거칠고 미세한 생각이 사라지고 희열과 행복이 남습니다. 세 번째 단계에 오면 희열이 없어지고 행복만 남습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이란 말이 있지요. 배움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는 나날이 덜어내는 것이란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삼매의 단계가 진행될수록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살면서 플러스에 집중하지만, 불교수행은 마이너스로 향하는 길입니다. 무엇인가 잘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삿된 행동(불선법)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수행의 길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삼매가 주는 희열(喜)이 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요? 수행을 오래 하신 분들 가운데는 삼매에 들면 세속의 어떤 것도 견줄 수 없는 정신적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수행을 권하려는 좋은 의도겠지만, 우리는 거기서 ‘니들이 삼매의 맛을 알아?’ 같은 태도 역시 엿보게 됩니다. 하지만 삼매의 희열을 과시하는 것 자체가 아직 세 번째 삼매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봐도 좋습니다. 삼매가 주는 희열이 사라져야 비로소 평온함과 바른 알아차림이 확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4. “여기 비구는 행복도 사라지고 괴로움도 사라져, 이미 희열과 근심을 버려서 괴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며, 평온 속에서 바른 알아차림이 청정해지는 네 번째 삼매에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합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행복한 느낌(樂)마저도 사라지게 됩니다. 즐겁다거나 행복하다거나 하는 이분법적 대립에 근거한 정신과 육체의 느낌과 분별들이 다 사라지게 되면서 오직 평온함 속에서 자신과 세계의 실상을 바로 알아차리는 단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도달한 이들은 선정에 들면 기쁨이 있다거나 행복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산대사가 《선가귀감》에서 말했던 몰자미(沒滋味)의 맛, 즉 아무런 재미가 없는 맛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맛을 풀이하면 감각적 욕망도 추구하지 않고, 악의나 의심을 지니지도 않으며, 느슨해지거나 게을러지지도 않고, 조급하게 들뜨거나 후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머니, 그런데 삼매는 이것이 다일까요? 분명 절에 오래 다니다보면 법문으로 구차제정(九次第定)이니 무색계 사선정, 상수멸정(멸진정) 같은 어려운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앞서 말한 네 단계의 삼매 이외에 다섯 단계의 삼매를 덧붙여 말하는 경전도 있고, 심지어 대승경전에선 백천삼매(百千三昧)라 하여 셀 수 없는 삼매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팔정도 가운데 바른 삼매에 해당하는 네 가지 선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색계 사선정은 불교도뿐만 아니라 인도의 바라문들도 공유하고 있는 내용이라 하여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부족하나마 이것으로 사성제와 팔정도에 관한 기초적인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에는 사성제, 팔정도와 더불어 근본교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십이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해보겠습니다.

어머니, 더운 날씨에 늘 건강하시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시길 아들이 기원합니다.

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 외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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