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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 (1)
2018년 10월 01일 (월) [조회수 : 797]

그리운 어머니.
여름을 보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나요. 젊은 사람들도 폭염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기에 저는 멀리서도 늘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더위도 조금씩 누그러져갑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어머니, 최근 성철스님이 쓰신 저술을 읽다가 깜작 놀란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안목이 없어서 스님을 그저 선사로만 생각했지만, 불교를 조금 배운 후 스님의 글을 읽으니 스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불교경전과 조사들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어느 불교학자보다 더 탁월하게 불교의 가르침을 논증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철스님의 명성이 허명(虛名)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참 스승을 만나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머니, 저는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에 의지해서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일에 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

어머니, 오늘은 십이연기에 대해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십이연기는 쉽게 이해되는 교리는 아닙니다. 일반 상식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낯선 개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이연기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반야의 지혜로 체득한 것이니 이를 단박에 이해하려 욕심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요. 십이연기는 불교에서 사성제를 대체할 만큼 중요한 근본교리입니다. 부파불교뿐만 아니라 중관, 유식, 천태, 화엄 등의 대승불교에서도 십이연기의 가르침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펼쳐내고 있지요. 그러니 십이연기가 불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연기법이라고 하지요. ‘이것이 생김으로 인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함으로 인해 저것이 멸한다’라는 원리를 연기법이라 부릅니다. 십이연기는 이 간략한 연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머니, 십이연기의 이해에 있어 <무명–행–식 … 유 –생–노사>라는 12지(支)의 순서를 잘 외우고 개념을 술술 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책은 십이연기에서 12지(支) 각각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치우쳐서 정작 십이연기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중요성은 놓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십이연기가 지닌 근본적인 의미와 그 바탕부터 새겨보려 합니다. 그러니 조급함을 잠시 내려두고 십이연기로 난 오솔길을 따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이 어쩌면 십이연기의 이해라는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십이연기와 고통

초기경전을 보면 십이연기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기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경전에서 십이연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서술하고 있는데 나누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직전에 직접 보신 것이 십이연기라는 입장이고, 두 번째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직후에 십이연기를 보셨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십이연기에 대한 부처님의 현관(現觀)이 깨달음 전인가 후인가 가리는 것 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왜 십이연기를 중생들에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십이연기를 설하셨습니다. 이 말을 조금 길게 풀면 무슨 뜻이 될까요? 부처님이 십이연기를 보시고 스스로 고통에서 풀려나셨고, 그 지혜를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공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부처님이 가장 크게 느꼈던 고통이 무엇일까요? 그 답은 부처님이 출가하신 이유에서 찾으면 되겠지요. 부처님이 카필라 성을 빠져나와 출가하신 직접적 계기는 ‘늙음과 죽음’이란 문제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줄여서 노사(老死)라고 하지요. 부처님의 출가를 끝까지 만류하는 아버지 정반왕에게 태자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가 늙음과 죽음을 막아주실 수 있다면 저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그만 정반왕은 태자의 출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늙음과 죽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앞둔 당신의 육체를 가죽 끈으로 간신히 묶어놓은 낡은 수레에 비유하실 정도로 늙으셨지요. 그리고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렇다면 고통, 즉 노사(老死)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했던 부처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경전에 따라선 부처님이 늙음과 죽음을 보인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이란 해석도 있습니다만, 부처님이 생물학적 늙음과 죽음을 맞이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부처님과 미혹한 중생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깨달음을 얻어서도 노사의 고통을 막지 못했다면 우리가 불교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분명 여기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트리고 있습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탄식하신 말씀을 들어보시죠.

“아, 세간 사람들은 고통에 빠져있다.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서 다시 태어난다. 중생들은 노사(老死)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

어머니, 우리가 빠트린 부분을 찾으셨습니까? 우리가 간과한 것은 바로 ‘다시 태어남’의 문제입니다. ‘재생(再生)’이라고도 부릅니다. 불교는 애초에 이 재생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가르침입니다. 태어남이란 원인이 있는 순간 늙고 죽는 결과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번만 태어나서 늙고 죽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막을 내린다면 어떨까요? 부처님은 분명 출가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왜냐면 부처님이 진실로 고통스럽게 여긴 것은 늙고 죽는 고통이 반복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늙고 죽음이 생기는 이유는 태어남에 있고, 이 태어남이 자꾸만 반복되는 바람에 늙음과 죽음이란 고통이 무한히 계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신 것이죠. 이것이 바로 십이연기의 내용입니다. 십이연기를 간단히 말하면 부처님이 반야의 지혜를 통해 늙고 죽음의 원인이 되는 태어남, 그리고 그 태어남의 원인이 되는 유有 등을 순차적으로 추적한 것을 열두 가지의 지支로 밝혀서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설하신 것을 말합니다.


십이연기와 인과법

어머니, 십이연기를 이해하기 위해 짚어야할 중요한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반복해서 태어남(재생)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일까요? 네, 바로 윤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즘 불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윤회를 믿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불교공부를 나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농후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지요. 윤회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인과법’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이연기가 바로 원인과 결과(인과)의 연쇄적 작용으로 인해 태어남과 노사의 고통이 반복되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거든요. 인과법은 연기법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십이연기는 우리가 앞서 공부했던 사성제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이연기를 고·집·멸·도로 환원해서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윤회, 즉 다시 태어남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인과와 연기법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것은 십이연기와 사성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근본교리인 사성제와 십이연기를 믿지 않는 불자가 과연 불자일 수 있을까요? 이웃종교인과 비교하자면 신과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는 불사(不死)를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사란 죽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사의 의미를 조심스레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었다는 뜻으로 부처님이 불사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태어난 이상 예외 없이 늙고 죽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설하신 십이연기법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해탈하신 뒤 불사를 얻었다고 선언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과 불사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십이연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윤회(재생)의 고리를 끊었으니 앞으로는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고, 태어남이 없는 이상 죽음이란 고통이 생길 리가 없겠지요. 이것이 ‘불사를 이루었다’는 말의 진정한 뜻이고, 불사란 말 뒤엔 항상 ‘재생하지 않는다’란 구절이 경전에 함께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어머니, 오늘은 십이연기의 근본적 이해에 바탕이 되는 고통과 인과, 그리고 윤회의 의미를 십이연기와 결부시켜 공부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십이연기의 각각의 지支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공부의 풍성한 수확을 얻으시길 멀리서나마 아들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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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 외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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