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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 (2)
2018년 10월 01일 (월) [조회수 : 209]

그리운 어머니.

벌써 단풍이 드는 계절로 접어들었습니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혹한의 겨울에 가까워진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시겠지만 하나의 현상에도 여러 의미가 혼재해 있어서 좋고 나쁨을 양단하기 어려운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이럴진대, 중생은 늘 좋고 나쁨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에만 애착을 가지기 일쑤입니다. 애착은 고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중생은 그것이 고통의 시작인지 모르지요. 성경 구절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결국 가장 애착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을 불러온다고 풀 수도 있겠습니다.

선가(禪家)에 체로금풍(體露金風)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을바람이 불어 본질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본바탕을 뜻하는 본지풍광(本地風光)이란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쪼록 올 가을에는 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한 줄기 바람에도 애착을 떨구고 자신의 본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를 기원해 봅니다.

 

십이연기와 사성제의 관계

어머니, 지난번에 저는 십이연기와 사성제는 다르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설명하면서 십이연기 공부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사성제나 십이연기, 두 가지 모두 고통에서 출발해서 고통의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성제의 출발이 고성제, 즉 ‘고통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 것과 같이 십이연기도 노사(老死), 즉 늙고 죽는 고통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초기경전에서 사성제와 십이연기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기술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나는 그것을 따라가는 동안 노사, 노사의 일어남, 노사의 소멸을 보았고, 노사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보았다. 생, 유, 취, 애, 수, 촉, 육처, 명색, 식도 이와 같다.”  

여기서 말하는 ‘노사’는 고통입니다. ‘노사’부터 ‘노사의 소멸로 이끄는 길’은 사성제를 말합니다. 그리고 생, 유, 명색, 식 등은 십이연기의 지분(支分)입니다. 다시 말해 사성제와 십이연기는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런데 붓다는 “그것을 따라가는 동안” 사성제를 보았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팔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붓다는 선인들이 밟아온 팔정도라는 옛 수행방법을 통해 사성제라는 진리를 직접 보고 체험하신 것이죠. 우리는 지금껏 사성제가 먼저고 사성제를 따라 팔정도가 나왔다고 알고 있지만, 경전에는 반대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붓다가 황무지를 헤매다가 옛 선인(옛 부처)들의 자취인 팔정도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서 사성제란 오래된 도시를 발견한 후, 십이연기를 통해 이 오래된 도시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새롭게 재건했다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옛길인 팔정도나 옛 도시인 사성제보다는 십이연기야말로 석가모니가 진리에 부합해 독창적으로 설하신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시기에 중생의 효율적 구제를 위해선 팔정도와 사성제를 넘어서는 구체적인 해탈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이연기의 근본의미

십이연기란 한 마디로 고통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12가지 지분(支分)을 들어 순차적으로 풀어놓은 것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그러나 고통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꼭 12가지 요소로만 설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경전에 따라선 5가지나 10가지로 정리된 것도 있습니다. 5지연기는 보통 ‘탐애연기’라고 하여 탐욕과 애욕이 고통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0지연기는 십이연기 가운데 무명과 행을 제하고 식(識)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식(齊識)연기’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동일한 경전이라 할지라도 고통의 발생은 10가지로, 고통의 소멸은 12가지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적 내용에 대해 세세히 고찰하는 것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십이연기의 골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어머니, 우리는 십이연기를 생각할 때 붓다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했다는 근본을 잊어선 안 됩니다. 따라서 십이연기를 기계적으로 ‘무명’부터 ‘노사’까지 쭉 외우는 것이 능사는 아닐뿐더러,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예를 들자면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一心二門)’이란 구절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를 두고 사람들이 하나의 마음에 진여와 생멸이란 두 가지 현상이 각각 나뉘어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자에 따라선 일심이문이 아니라 ‘이문일심(二門一心)’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진여와 생멸은 둘이 아니라 한 마음이라고 보는 것이 《대승기신론》이 말하고자 하는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십이연기도 마찬가집니다. 습관적으로 ‘무명이 있으니 행이 있고, 행이 있으니 명색이 있고’ 등의 ‘있다’를 기준으로 생각하다보면 각각의 지분이 고유한 실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십이연기는 이러한 지분들이 실체가 없이 연기된 것임을 알려주는 목적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런데 십이연기 가운데 ‘12’라는 숫자에만 집착하고 ‘연기’라는 말은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또한 십이연기는 애초에 무명에서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지막에 있는 노사(고통)에서 출발해 그 원인을 연쇄적으로 따져나가다가 무명에 닿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왜 원인을 규명할까요? 어떤 곳에 파리가 자꾸 꼬일 때, 파리만 잡으려고 들면 끝이 없겠지요. 파리를 없애는 방법은 파리를 꼬이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되는 것이지요. 십이연기의 이와 같은 의미는 경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옷 때문에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니고 음식과 거처와 특정한 존재를 위해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니다.’ 실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 이었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 아픔, 고통, 비탄, 고뇌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나에게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라고.”

“나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이 없으면 노사가 없고, 무엇이 소멸되면 노사가 소멸되는가.’라고. 내가 지혜로 마음을 집중해서 생각하는 동안 ‘생이 없을 때 노사가 없고, 생이 소멸할 때 노사가 소멸한다.’라는 여실한 깨달음이 생겨났다.”

붓다는 고통이란 ‘무더기의 끝’, 즉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고, 이를 위해 노사의 원인을 거슬러서 파헤치다보니 노사, 생, 유, 취로 시작해 무명에 이르는 12지의 연쇄를 현관(現觀)하게 된 것이죠.


십이연기의 정형구

십이연기는 일반적으로 ‘무명이 있으니 행이 있고’ 등의 ‘있다’로 시작하는 유전연기(流轉緣起)와 ‘무명이 소멸하니, 행이 소멸하고’ 등의 ‘소멸’로 출발하는 환멸연기(還滅緣起)로 나누어집니다. 유전연기는 고통의 발생, 환멸연기는 고통의 소멸을 뜻합니다. 유전연기를 순관(順觀), 환멸연기를 역관(逆觀)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십이연기를 볼 때 고통의 발생보다 고통의 소멸에 집중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에 더 부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순관이든 역관이든 경전에선 모두 ‘무명’에서 출발합니다. 붓다가 십이연기를 현관한 과정은 ‘노사’에서 ‘무명’으로 거슬러 올라갔지만, 경전은 ‘무명’에서 출발해 ‘노사’에서 마무리 되는 정형구로 표현됩니다.

“무명의 소멸로부터 행들이 소멸하고, 행들의 소멸로부터 식이 소멸하고, 식의 소멸로부터 명색이 소멸하고, (중략) 생의 소멸로부터 노사가 소멸하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괴로움이 모두 소멸한다. 이와 같이 온전히 커다란 고통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부처님 당신이 현관한 것과 달리, 중생들을 위해 설하실 때는 곧바로 무명에서 시작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어머니, 우리는 여기서 붓다의 세심함과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중생들이 타파해야 할 목표가 무명이란 것을 확연히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지요. 무명을 타파하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난 자를 우리는 부처라 부릅니다. 그러니 붓다는 ‘마음을 잘 쓰자’, ‘부처가 되자’ 같은 말 대신에 무명을 앞에 세움으로써 명확한 수행목표를 중생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어머니, 오늘은 십이연기의 발생과 경전 속 정형구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십이연기의 각 지분의 조건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푸른 하늘처럼 청정한 부처님의 마음과 가을 햇살 같은 평등한 광명이 어머니와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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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 외

글 |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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