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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속 명구(名句) 여행
2017년 09월 01일 (금) [조회수 : 88]

   
 
이제 생각해보면 밤송이들에게 참 못할 짓을 많이 했다. 아직 익지도 않은 밤송이를 짓이겨 밤알을 꺼내서 떫은맛이 아직 물씬한 속껍질이 더러 붙어있는 채로 입에 넣었으니, 밤송이가 어린이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늦더위 속에 입추가 훌쩍 지났다. 머지않아 밤송이를 괴롭히지 않아도 밤톨이 떨어지고 도토리도 집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올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통증 그것도 깊은 통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밤새 원인모를 통증으로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보면 밤중에 집 뒤 언덕에서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당나라의 시불(詩佛)로 알려져 있는 왕유(王維)도 밤중에 잠들지 못하고 그것도 비 내리는 가을밤에 등불 아래로 기어들어와 찌르르 울어대는 밤벌레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시를 지었다.
추야독좌(秋夜獨坐), ‘가을밤에 홀로 앉아서’라고 옮겨진다.

獨坐悲雙 독좌비쌍빈
空堂欲二更 공당욕이경
雨中山果落 우중산과락
燈下草蟲鳴 등하초충명
白髮終難變 백발종난변
黃金不可成 황금불가성
欲知除老病 욕지제노병
唯有學無生 유유학무생

홀로 앉아서 양쪽의 귀밑머리
불쌍하게 여기노라니
텅 빈 집에 시간이
한밤중 이경이 되려하네,
빗속에 산나무 열매 떨어지더니
등불아래 풀벌레가
기어들어와 우는 구나
백발은 끝내 검게 변하지 못하고
단사로 황금을 만들 수 없는 것을
생로병사를 없애는 법을
알고자 하는가
오로지 무생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 있을 뿐이라네

이경(二更)은 대략 밤 9시에서 11시 사이이다. 가을로 접어들면 제법 깊은 밤중이다. 서울의 도심은 아직 초저녁이다.

산중 빈집 그것도 비 내리는 밤에 홀로 앉아있는 시인에게는 깊은 밤이다. 시인의 감수성 안테나가 펼쳐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빗소리가 달팽이관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시가 몇 편 줄줄 나올 판인데 산에서 나무 열매 떨어지는 툭 소리가 더해진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뭇잎 뒤쪽으로 피신했던 풀벌레가 잠시 기다려보다가 빗줄기가 굵어지고 쉬이 그치지 않을 것 같아지자 시인이 밝혀놓은 등불 아래로 피신장소를 옮긴다. 어디 뒷다리나 앞다리에 빗방울 몇 개가 매달려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시인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풀벌레 울음소리가 달팽이관을 거쳐 중추신경계를 노크하면 듣는 이들은 이제 자기만의 앨범을 펼쳐놓고 상념에 젖어든다. 전방 초소에서 이 소리를 듣는 이등병은 소리는 간데없고 이 얼굴 저 얼굴이 스쳐 지난다. 템플스테이 중에 풀벌레라도 울어주면 제행무상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된다. 이 소리 위로 별빛이라도 몇 줌 얹어지면 이제 산 계곡은 자연의 소리 산사음악회가 저절로 열린다.

할머니의 귀에 이 소리가 들어가면 할머니는 어느새 철없는 꼬마가 되어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시절로 차비 한 푼 안들이고 바로 직행한다.

다시 비 내리는 산속 시인의 집으로 돌아오자. 등불 빛 속으로 풀벌레 울음소리가 젖어들고 풀벌레 울음소리의 코드 속으로 등불 빛이 스며든다. 그러다보면 등불이 풀벌레가 되어 불빛을 비추어주는 건지 소리를 들려주는 건지 그건 뭐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불로장생도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야 가치부여가 되겠지만 생자필멸의 도리를 일찍이 알고 있는 시인에게는 관심사항이 아니다. 아마 시인은 타임머신으로 좋은 염색약을 당나라 시대로 보내주어도 크게 반기지 않을 것이다. 백발이면 어떤가. 젊어서 빠지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풀벌레의 귀에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어떻게 스며드는 것일까. 풀벌레들의 눈망울에 스며드는 별빛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저 하늘에 떠있는 별들도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듣는가. 이 시 속에서 시인과 함께 빗소리를 들었던 풀벌레는 산에서 나무열매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들었을까. 작은 마이크를 잘 만들어서 풀벌레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고 풀벌레 입에 살짝 매달아주면 세월을 견디느라 지쳐서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다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시인의 말대로 생멸이 아예 없는 무생의 도리를 배우는데 귀를 쫑긋 세워볼 일이다.

글 :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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