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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역사와 문화
2017년 09월 01일 (금) [조회수 : 135]

   
▲ 황악산 직지사 전경
직지사의 역사

직지사(直指寺)가 있는 황악산(黃岳山)의 黃자는 5방색 중에서 가운데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황자를 사용하는 것은 세상의 중심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직지사는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가는 산에 있는 중요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황악산을 ‘큰 산이면서도 돌이 아니라 황토로 된 산’이라고 하여 부른다고도 하지만 황악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에 위치하는 산으로 조선 초 정종의 어태(御胎)를 직지사의 북쪽 봉우리에 묻었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신령한 산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직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직지사에는 4편의 조선시대 사적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2편이다. 1488년 학조대사가 지은 사적기와 1577년 율곡 이이가 지은 사적기는 전하지 않고, 1681년 조종저가 짓고 1741년에 세운
<직지사사적비>와 1776년 직지사의 급고자 수우스님이 지은 <경상도금산군황악산직지사사적>이 전하고 있다. 두 기록에 모두 신라 불교의 기반을 닦고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직지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흔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한편 1681년 조종저가 쓴 사적비의 내용에는 고려 초 능여스님이 사찰을 창건할 곳을 손가락으로만 재서 짚어내었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어 직지사의 창건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지는 않다.

한편 직지사라는 사명(寺名)에서 直指란 선종의 종지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단어 중에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의 의미는 인간은 본래 모두가 부처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그대로 볼 줄 알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선종의 初祖인 달마의 가르침이다.
직지사는 창건이후 고려시대인 12세기 말에 직지사에 대장경을 봉안했다는 기록 외에는 이렇다할 기록이 전하고 있지 않다. 조선에 들어서는 2대왕인 정종의 어태를 봉안하고 왕실로부터 지원을 받은 내용이 전하는데, 이때 구체적인 건물의 이름과 전체적인 규모 등이 확인된다. 이때 상당한 규모의 중창이 있었는데, 암자 19개를 제외한 큰절의 규모만 14개의 전각, 18개의 당우, 5개의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5층 목탑도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어 소실되었다. 당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전각은 천불전, 천왕문, 일주문뿐이라고 전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의 피해복구는 1602년부터 70여 년이 소요되었는데, 복구 후의 현황은 1681년 사적비의 내용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주요한 건물만 8殿·3閣·13堂·4寮·3莊·4門이라하며, 사적비의 후반부에 전각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전·각·당·료 등 명칭이 불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건물의 수는 30여 동에 이르러 전란의 상흔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776년 <황악산직지사사적>에는 전각 15동, 대방사 10동이 있다고 적고 있어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사찰의 규모는 크게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지사 가람 현황

직지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규모가 상당하지만 조선시대에도 규모가 꽤 컸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직지사는 특히 녹원스님께서 주지를 맡으면서 불사를 통해 사세가 확장되었다. 조선시대 사역을 추정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자하문부터 시작하여 천왕문으로 연결되는 산문체계를 공유하는 대웅전 영역과 천불전(비로전) 영역으로 구성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초 정종의 어태를 봉안하고 사찰을 중수한 기록에는 대웅대광명전과 대비로금당이 보이는데,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대웅전과 천불전(비로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영역중 대웅전 영역이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산문체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대웅전이 주불전이며, 천불전은 보조불전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웅전에는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고, 천불전(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어 대웅전과 중복되는 의미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 비로전에 천불을 봉안한 것으로 보아 천불을 비로자나불의 화불로 볼 수 있으며, 비로전은 전형적인 다불신앙을 통해 개인적 염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전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대양문이다. 대양문이란 실제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문으로 직지사에서는 일주문과 금강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大陽이란 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빛 즉,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주불전에서 가장 가까운 문이다. 실제로 대양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은 수륙재 등의 의식에서 영가를 씻기고 부처님에게 데리고 들어가는 상징정인 문을 말하는 것으로, 흥국사와 송광사의 법왕문, 봉정사의 진여문과 같은 문이다.

직지사에는 4기의 석탑이 있는데, 모두가 단층기단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모두 외부에서 직지사로 옮겨온 석탑이라는 특징이 있다. 우선 대웅전 앞의 2기는 문경의 도천사지에서 옮겨 온 것으로 현재 보물 제60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비로전 앞의 1기도 같은 곳에서 옮겨온 것이며 역시 보물 제6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3기의 탑이 있던 도천사지는 특이하게도 3기의 석탑이 강변을 향해 나란히 배치된 특이한 사찰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도천사지에 무너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4년 녹원스님께서 이곳으로 이운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 사지에 방치된 석탑들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문화재로서만 남아있는데 반해, 이 석탑들은 사찰에 여법하게 모셔져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외에 청풍료 앞에도 1기의 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은 1968년 낙동강변의 원동에 있는 강락사지라고 전하는 곳에서 선산군청으로 옮겨졌다가, 1980년 직지사로 옮겨 온 것이다.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된 직지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건축물이다. 임진왜란 이후 중수되는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1735년 중수된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불전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보물 제1859호로 지정된 수미단 위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뒤로는 역시 보물 제670호로 지정된 삼존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난을 극복할 때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승병 활동이다. 임진왜란 때 가장 대표적인 스님, 서산대사로 알려진 청허휴정과 사명유정스님이 계시다. 이중 청허휴정스님은 승병을 모집하고 사명유정스님이 직접 전장에서 승병을 통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사명유정스님이 출가하신 사찰이 바로 직지사이다.
조선시대 사명당의 출가사찰이란 의미는 현재도 불교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현재 직지사는 조계종의 행자교육원으로 발심을 하는 수행자들이면 처음 무조건 들러 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찰이다.

글 : ‌박상준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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